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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천줄읽기
ISBN : 9788966802180
지은이 : 앙리 피렌
옮긴이 : 강일휴
쪽수 : 165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2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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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중세의 시작에 관한 ‘전통적 학설’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게르만족의 침입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고, 이때부터 중세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피렌은 18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이 제시한 이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러한 ‘전통적 학설’을 단호히 거부한다. ‘피렌 테제’의 핵심을 다소 거칠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격변이 발생해 새로운 시대, 즉 중세가 시작된 것은 게르만족 침입이 아니라 이슬람 침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이슬람 침입 이전의 유럽>)는 게르만족 침입으로 역사의 흐름에 큰 변화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게르만족 침입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전통과 지중해 세계의 통일성”은 근본적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제2부(<이슬람과 카롤링거 왕조>)는, 게르만 침입의 경우와는 달리, 이슬람의 침공으로 고대의 전통과 지중해의 통일성이 파괴되어 새로운 시대, 즉 중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피렌 이후 고고학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 방법, 그리고 체계적인 사료의 발굴과 연구 등으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 책에서 ‘사실(fact)’이라는 측면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그의 독창적인 관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롤링거 시대에 유럽의 중심이 지중해 지역에서 북부로 이동했다는 지적을 비롯한 그의 여러 주장들은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다.

200자평
중세의 시작에 관한 ‘전통적 학설’은 게르만족의 침입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피렌은 ‘전통적 학설’을 단호히 거부하고 대격변이 발생해 새로운 시대, 즉 중세가 시작된 것은 이슬람 침공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지은이 소개
1862년 12월 22일 벨기에의 베르비에에서 직물업에 종사하는 집안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그가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랐지만 역사가가 되겠다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리에주 대학교에 진학해 1883년에 중세 디낭을 주제로 하는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취득한 다음 해인 1884년에 장학금을 받아 독일로 건너가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공부했다. 이어서 1885년 파리에서 국립 고문서 학교와 파리 고등 연구원에서 수학했다. 1886년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겐트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중세사와 벨기에 역사를 담당했으며, 1930년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이 대학에서 근무했다.
그의 주요 저작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중세의 개막에 관한 것으로, 대표적인 저작이 바로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다. 피렌은 생전에 자신의 손으로 이 책을 탈고하지 못했다. 그가 죽은 후 제자 베르코트랑이 아직 미완성 상태에 있는 각주 등을 보충한 뒤 그의 아들 자크 피렌이 1937년에 이 책을 출판했다. 둘째, 중세도시에 관한 것으로, 이에 관한 대표적인 저서로 ≪중세도시≫(1927)가 있다. 셋째,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모국 벨기에의 역사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저서로 ≪벨기에의 역사≫(7권, 1899∼1932)가 있다. 이외에 포로수용소에서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유럽의 역사≫(2권)가 손질을 거친 뒤 (기억에 의존해 썼기 때문에 연도 등은 대부분 괄호로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1956년에 뒤늦게 출판되었다.

옮긴이 소개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했으며(1981),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중세 프랑스 코뮌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1992). ≪서양 중세사 강의≫(공저, 2003)를 썼으며, 앙리 피렌의 ≪중세 유럽의 도시≫(1997), 조르주 뒤비의 ≪서기 천년≫(1999), 콘스탄스 브리텐 부셔의 ≪중세 프랑스의 귀족과 기사도≫(2005), 린 화이트의 ≪중세의 기술과 사회 변화≫(2005)를 번역했다. 주로 서양 중세도시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으며, 최근에는 중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이슬람 침입 이전의 유럽
제1장 게르만족 침입 후 서유럽 세계에서 지중해 문명의 존속
1. 게르만족 침입 이전의 ‘로마 세계’
2. 게르만족 침입
3. ‘로마 세계’의 게르만족
4. 서방의 게르만족 국가들
5. 유스티니아누스(527∼585)

제2장 게르만족 침입 후 사회경제적 상황과 지중해 항해
1. 인신과 토지
2. 동방 세계와의 교류. 시리아인과 유대인
3. 내륙 상업
4. 화폐 및 화폐유통

제3장 게르만족 침입 후 지적 생활
1. 고대의 전통
2. 교회
3. 예술
4. 사회의 세속적 성격
결론

제2부 이슬람과 카롤링거 왕조
제1장 지중해에서 이슬람의 팽창
1. 이슬람의 침공
2. 서지중해의 폐쇄
3. 베네치아와 비잔티움

제2장 카롤링거가(家)의 쿠데타와 교황권의 방향 전환
1. 메로빙거 왕조의 쇠퇴
2. 카롤링거 궁재(宮宰)들
3. 이탈리아, 교황, 비잔티움. 교황권의 방향 전환
4. 새로운 제국

제3장 중세의 개막
1. 사회경제적 조직
2. 정치조직
3. 지적 문명
결론

옮긴이에 대해

책 속으로
서지중해는 이슬람의 호수가 되어버렸다. 이제 지중해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국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슬람에 정복된 지중해 지방들은 이제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궤도 속으로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동방과 서방은 단절되었다. 이처럼 이슬람은 게르만 침입에도 불구하고 존속했던 지중해의 통일성을 파괴했다. 이것은 포에니 전쟁 이래 유럽사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것은 고전 전통의 종말이요 중세의 개막이다.
-97~98쪽

샤를마뉴는 자신을 더 이상 로마의 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의 보호자로 행동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작센인들과 롬바르드족에 승리를 거두었고, 아바르족을 몰아냈다. 이제 그는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를 제외한 서방의 유일한 지배자였다. 비록 비잔틴 우월성의 잔재가 여전히 ‘로마 세계’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그런 영향은 샤를마뉴가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적 지역에는 없었다. 그의 교사이자 고문인 앨퀸이 샤를마뉴를 황제로 칭한 것은 당연했다.
-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