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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연 이야기
ISBN : 9791130426136
지은이 : 신인령
옮긴이 :
쪽수 : 340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6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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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화여대 법대 교수와 총장을 지낸 신인령의 글 모음집. 저자가 그동안 여러 자리에서 발표했던 추모의 글, 추천의 글, 축하의 글, 편지, 기고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모았다. 평생 여성·노동·법을 화두로 삼아 연구하고 실천해온 저자는 다양한 글을 통해 그동안 맺어온 소중한 인연에 대해 , 그리고 언제나 약자들에게 편향되고 싶었던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한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10여 년간 노동자 교육에 헌신한 저자는 노동자보다 노동문제를 훨씬 더 깊게 고민하고, ‘노동자보다 노동자를 더 지독하게 사랑한 사람’으로 꼽힌다. “어떤 형식으로 쓴 것이든 절실한 인연과 기억이 묻어있는 것만 뽑아냈다”는 저자의 말처럼 진솔하고 절절한 마음을 담은 글이 세월의 흐름에 퇴색하지 않고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은이 소개
1943년 강원도에서 출생했다.1962년 이화여대 법학과에 입학, 4학년 때 법정대학 학생회장을 맡아 한일회담비준반대운동에 앞장서면서 이화여대의 시위를 이끌었다. 이때 지명 수배되어1년여의 도피생활 끝에 은사의 도움으로 졸업하고, 고 강원용 목사와의 인연으로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산업사회교육 간사로 10년간 열정을 불살랐다. 유신 말기 이른바 ‘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으로 구속되어약 1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85년 학위를 마치고 이화여대 법학과와 여성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법과대학 교수로 23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법과대학 학장, 이화여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교수 시절에는 노동·여성·법을 화두로 삼고 실천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 정립과 연구에 힘썼다. 정년 퇴임 후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이사, 남북평화재단 이사, 서울특별시 ‘시정 고문단’ 고문 및 ‘원전하나줄이기’ 시민위원회 위원장, 환경운동연합 고문 및 후원회장,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 이사장 등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차례
01 먼저 가신 그리운 님들시대의 큰 스승 강원용 목사님/‘정치변호사’‘인권변호사’황 변호사님/‘천하의 리영희 선생님’과 작별하며/고 박영숙 선생님을 추억하며/과분한 기대와 사랑을 주신 이태영 선생님/눈물겨운 민중사 그 자체 나병식 선생02 아름다운 인연들내가 아는 강형용 박사님/정의숙 선생님, 윤후정 선생님께/험난한 시대에 교대로 울던 한 변호사님/히토츠바시대학에서 만난 선생님들께/강 목사님과 크리스챤아카데미와 나/법정스님께/사랑하는 우리 선생님께/축하합니다/전노협백서 작업으로 고단한 경원에게/멘토 선생님들께/사법 암흑기의 인권변호사 홍 변호사님/조희연 교수의 결단과 봄이 오는 소리/눈 밝은 서울시민들의 선택/이근복 원장님 취임이 참 기쁩니다/강원도의 늘 푸른 산천03 담대한 인연들모든 것을 새롭게 할 희망과 낙관/어머니, 나에게 많이 배운 친구 한 명만 있다면/긴조세대, 초심으로 한결같이/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숨’ 문 여는 날/생명과 평화를 일구려는 원대한 꿈/안녕하세요 원풍 조합원 여러분/탄압의 세월 전노협 6년/여해 제자답게 살자/동아투위 김종철님/이대 여성학의 힘/환경감수성을 지닌 후원회원 여러분/파란만장 세월 속의 한결같은 승리/기후변화와 핵에너지의 심각성04 축복의 만남들고단했지만 축복이었던 친구들/외유내강의 노동운동가 장현자님/보살핌과 나눔의 사표 임락경 목사님/완행버스 박순희님/고생바가지 단병호 위원장님/사랑의 의미를 되묻다/이화여대 ECC와 건축가 이광배님/세월호를 들어올리는 교육05 소중한 인연들이 말하는 나신인령/은옥이가요/열심히, 후회없이 일했습니다/선생님의 정년퇴임에 즈음하여/노동기본권에 대한 천착과 혜안/신 선생님의 코드 ‘노동·법·여성’/어디서나 함께 있는 듯 의지되고 든든한 친구/법률가의 길06 나 자신이 말하는 나이화교정을 떠나며/뒤늦게 동참하는 환경운동/크리스챤아카데미 중간집단교육/‘내집마련’ 스토리/법학도 신인령의 회고담 

책 속으로
내가 박철언의 이름을 안 것은 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공안검사 시절이던 1979년 봄이다. 그들은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신념으로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나에게 위협과 회유를 하던 서울 지검의 그때 그 방과 그의 부릅뜬 눈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고 선명하다. -14쪽 이태영 선생님은 천호동에 있는 어느 어두컴컴한 중국집 구석방에서 내 고집을 꺾느라 울면서 강권하셨다. “사법시험 안 봐도 좋다. 그저 졸업장만 받아라.”결국 나는 내 뜻을 접고 복학을 했다. 이렇게 하여 맘에 없는 졸업장을 받게 되었고 ‘졸업장으로는 밥 먹고 살지 않겠다’고 작정했던 내가 결국은 그 졸업장으로 살아오게 되고 말았다. 심지어 뒤늦게는 모교의 교수직과 총장직까지 맡게 된 것이다.-36쪽 장현자 님은 나의 사랑하는 노동자 친구다. 그는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얌전하기까지 하여 그가 강인한 사회운동가라는 것을 얼른 알아채기 어렵다. 그야말로 외유내강한 그는 1970년대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우뚝 서서 역사를 만들고 자신과 동료들의 인격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왔으며, 어떤 폭압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드러내 보여준 극소수 노조 간부 중 한 사람이다. -178쪽 살아온 길을 돌아보니 언제나 ‘외롭고 부끄럽고 병약하고 힘겨운 세월’이었던 것이 바로 내 생애의 큰 축복이었다. 그리하여 부족한 사람이 중심은 잃지 않았고, 교만이나 경거망동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