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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작품집
ISBN : 9788964063293
지은이 : 이병주
옮긴이 :
쪽수 : 231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0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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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마흔네 살의 늦깎이 작가로 시작해 한 달 평균 200자 원고지 1000매, 총 10만여 매의 원고에 단행본 80여 권의 작품을 남긴 이병주의 문학은, 그 분량에 못지않은 수준으로 강력한 대중 친화력을 촉발했다. 그와 같은 대중적 인기와 동시대 독자에의 수용은 한 시대의 ‘정신적 대부’로 불릴 만큼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 작가를 그 시대의 주요한 인물로 부상시키는 추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는 작가의 타계 이후 20년이 가까운 지금, 이제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으로 진행되고 있는 작품의 대중적 수용 및 실용성, 곧 문화 산업의 활발한 추진과 더불어 다시 살펴보아야 할 면모를 여러 방면에서 촉발한다. 이병주 문학이 갖는 독특한 내용 및 구성은 이 대목에 있어 매우 효율적인 요인으로 기능하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재미, 박학다식과 박람강기, 체험의 역사성, 지역적 기반 등 여러 요소가 그의 문학 가운데 잠복해 있는 까닭에서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 <철학적 살인>,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 <예낭 풍물지>는 이병주의 작품 가운데서도 수발(秀拔)한 중·단편들이다. 세 작품은 1972년에서 1976년 사이에 발표되었으니,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8년, 그리고 데뷔한 지 7년째부터 씌어진 것으로, 언론과 문학 양면에 걸쳐 뛰어난 문장가였던 그의 문필이 한결 유장해졌을 무렵이다. 뿐만 아니라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파란만장한 삶의 풍파가 세상살이의 문리(文理)를 틔워, 한 작가가 가장 의욕적으로 작품을 쓸 만한 지점에 도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세 소설은 이병주의 전체 작품 세계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며, 거기에 담긴 바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들도 작가의 사상·체험·상상의 방대한 부피 중 미소한 대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단단한 세부들은 우리에게, 이 작가가 정녕 소중히 알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생각이 무엇이며, 그 생각의 통로를 되짚어 작가의 작품 한복판으로 진입할 방법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지시한다. 작가의 전체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영역이 있는 만큼, 공들여 제작한 개별의 작품을 공들여 읽어야 할 영역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병주의 세계에는 그런 대표성을 가진 소설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200자평
한국의 발자크 이병주. 그는 천차 만별의 창작 유형으로 백화난만한 화원처럼 다양한 주제 의식을 다뤘다. 현란한 영상문화의 물결에 밀려 문자 매체의 전통적 상상력이 고갈되어 가는 이 시대, 이병주식 이야기성의 회복을 통해 인문적 사고의 내면 확장과 온전한 세계관의 균형성을 확립한다

지은이 소개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는 1921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아버지 이세식과 어머니 김수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를 졸업하고, 이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에 진학해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지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해 1948년 진주농과대학, 혜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 강의를 했다.
등단하기 이전인 1954년에는 <부산일보>에 소설 ≪내일 없는 그날≫을 연재했다. 이 작품은 당시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었으며 훗날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황용주와 편집국장 이상우가 합심해 지방신문 소설을 육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게 한 것으로, 그가 중앙 문단 데뷔 전 쓴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55년부터는 <국제신보> 편집국장 및 주필로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인한 필화 사건으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년 7개월 후에 출감했다. 그 뒤 외국어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5년 중편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면서부터다. 계속해서 <매화나무의 인과>, <마술사>, <쥘부채>, ≪관부연락선≫ 등을 발표했고, 그중 ≪관부연락선≫은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까지의 한국 지식인들을 역사적 방법으로 다룬 점에서 문제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뒤에도 그는 죽을 때까지 한 해도 빠짐 없이 중·단편소설을 발표하거나 신문, 잡지 등에 장편소설을 연재했다. 뿐만 아니라 그사이 펴낸 소설집만도 60권이 넘는다.
이 밖에도 ≪지리산≫, ≪산하≫, ≪행복어사전≫, ≪그해 5월≫ 등 기록될 만한 많은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와 시대,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좌우익의 대립, 4·19혁명, 5·16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는 거의 지식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리산≫의 이데올로기 문제와 비극적 인간들, ≪변명≫의 젊은 지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했던 역사를 위한 변명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미완의 작품인 ≪별이 차가운 밤이면≫의 일본 유학생들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는 1977년 장편소설 ≪낙엽≫과 중편소설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21

철학적 살인(哲學的 殺人) ·············23
겨울밤-어느 황제(皇帝)의 회상(回想) ·······55
예낭 풍물지(風物誌) ···············119

엮은이에 대해 ··················220

책 속으로
한참 동안을 침묵한 채 있은 뒤 내가 물었다.
“라리사 라이스너를 읽었읍니까?”
그 말엔 대답하지 않고 노정필 씨는
“이 선생은 어떤 각오로 작가가 되었읍니까?”
하고 되물었다.
“기록자(記錄者)가 되기 위해서죠.”
“기록자가 되는 것보다 황제가 되는 편이 낫지 않겠소?”
말의 내용은 빈정대는 것이었지만 투엔 빈정대는 냄새가 없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목격자(目擊者)입니다. 목격자로서의 증언(證言)만을
해야죠. 말하자면 나는 그 증언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읍니다.
내가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일, 그 일을 위해서 어떤 섭리의 작용이 나를
감옥에 보냈다고도 생각합니다.”
제법 건방진 소리라고 내 자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버티어 보였다.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