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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 천줄읽기
ISBN : 9788964066201
지은이 : 왕세정
옮긴이 : 김장환
쪽수 : 264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0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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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조선시대 현종실록자본 ≪세설신어보≫(연세대학교 소장)를 저본으로 해 번역한 위의 ≪세설신어보≫ 완역본 중에서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고사 575조 가운데 321조를 수록했다. 따라서 이 책은 ≪세설신어보≫의 선역(選譯)이면서 ≪하씨어림≫의 선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설신어≫와 그의 속서 ≪하씨어림≫
중국 위진남북조 송나라의 문인 유의경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는 후한 말에서 동진 말까지 실존했던 700여 명에 달하는 인물의 독특한 언행과 일화를 수록해 놓은 필기소설집이다. 당시의 문학·예술·정치·학술·사상·역사·사회상·인생관 등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면모를 담고 있어, 중국 중고시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하다. 그 결과 후대의 여러 작가들이 본받는 지표가 되어 당나라 때부터 민국 초까지 역대로 속서들이 많이 지어짐으로써, 중국 지인소설사상 이른바 ‘세설체 문학’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명대 하양준의 ≪하씨어림(何氏語林)≫은 ≪세설신어≫의 주요 속서 가운데 하나다. 체재는 ≪세설신어≫를 답습하되 <언지(言志)>와 <박식(博識)> 두 편을 추가했다. 그 시대 범위는 양한대부터 송·원대까지며, ≪세설신어≫에 수록된 고사는 제외되어 있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劉孝標) 주를 모방해서 각 조 밑에 다른 책의 기록을 인용해 주를 달아 해당 인물의 생평과 그와 관련된 고사를 소개함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각 편 앞에는 소서(小序)를 두어 편목의 함의와 편집 의도 등을 밝혀 놓았으며, 일부 고사의 뒤에는 자신의 논단(論斷)을 끼워 넣어 찬자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의 결합-≪세설신어보≫
≪세설신어보≫는 명대 왕세정이 유의경의 ≪세설신어≫와 하양준의 ≪하씨어림≫ 중에서 각각 일부분을 삭제해 합쳐 놓은 형태로 산정했다. 처음에는 산정된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이 합각(合刻)한 형태로 있다가 나중에는 두 책이 혼합한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세설신어보≫의 판본은 20권본과 4권본이 있는데, 20권본이 먼저 간행되고 4권본이 나중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권본은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을 산정해 조합해 놓은 것으로 별행본(別行本)으로 간행되었으며, 4권본은 거의 대부분이 ≪세설신어≫와 합각한 형태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세설신어≫의 고사를 다시 수록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산정한 ≪하씨어림≫의 고사만을 수록해 놓았다.
≪세설신어보≫의 편목은 ≪하씨어림≫에서 추가된 <언지>와 <박식> 두 편이 다시 삭제되고 ≪세설신어≫의 본래 편목에 따라 36편으로 되어 있다. 각 편에 수록된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시대 범위는 양한에서 원대까지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 주와 ≪하씨어림≫의 하양준 주 역시 약간의 산정을 거쳐 그대로 활용했다. 따라서 ≪세설신어보≫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가 한·위·진대에서 송·원대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1500년간에 실존했던 700여 명의 인물 정보와 역사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명대는 ‘세설체 문학’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서, ≪세설신어≫의 속서가 가장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세설신어≫ 정신의 통시적 구현을 의도로 편찬된 ≪세설신어보≫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이 조선에 온 시기는 조선 선조(宣祖) 39년(1606)이고 ≪세설신어보≫는 명 가정 35년(1556)에 처음 간행되었으므로, 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국내에 수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세설≫에 대한 국내 문인 학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많았음을 말해 준다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세설≫의 중국 판본이 집중적으로 수입되었는데, ≪세설신어보≫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20권본과 4권본이 고루 수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직접 ≪세설신어보≫를 간행하기도 했다.

200자평
유의경의 ≪세설신어≫와 그 속서인 하양준의 ≪하씨어림≫ 중에서 각각 일부분을 삭제해 합쳐 놓은 형태로 왕세정이 산정한, 중국 한대에서 원대까지 실존했던 문인이나 관료 등 인물의 언행과 일화를 담은 고사집이다. 짤막한 편폭 안에서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대상 인물의 풍모를 효과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중국의 문화와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면모를 담았다.

지은이 소개
왕세정은 자가 원미(元美), 호가 봉주(鳳州)·엄주산인이며 태창[太倉: 지금의 장쑤성(江蘇省)에 속함] 사람이다. 명나라 가정 26년(1547)에 진사가 되었으며, 남경 형부주사(刑部主事)와 산동부사(山東副使)를 지냈다. 왕세정은 당시 정권을 전횡하던 엄숭(嚴嵩) 부자를 탄핵한 양계성(楊繼盛)을 변호했는데, 그 일로 엄숭이 그의 부친을 죽이고 그를 파직시켰다. 나중에 엄숭이 세력을 잃자 왕세정은 다시 기용되어 형부상서(刑部尙書)까지 올랐다.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후칠자(後七子)’의 영수가 되었으며, 이반룡이 죽은 뒤로는 20년간 문단을 이끌었다.
저작으로는 ≪세설신어보≫ 외에 ≪엄주산인사부고≫ 174권, ≪속고(續稿)≫ 207권, ≪독서후(讀書後)≫ 8권과 ≪고불고록≫, ≪완위여편(宛委餘編)≫, ≪염이편(艶異編)≫, ≪봉주필기(鳳洲筆記)≫, ≪엄주고선≫, ≪전당시설(全唐詩說)≫, ≪엄산당별집≫, ≪가정이래수보전(嘉靖以來首輔傳)≫, ≪화원≫, ≪서원(書苑)≫, ≪엄주산수제발≫, ≪이물휘원(異物彙苑)≫, ≪휘원상주(彙苑詳註)≫, ≪사승고오(史乘考誤)≫, ≪척독청재(尺牘淸裁)≫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2004∼2005), 같은 대학교 페어뱅크 센타(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객원교수(2011∼2012)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중국문학의 벼리≫, ≪중국문학의 갈래≫, ≪중국문학의 숨결≫,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世說新語)≫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세설신어≫(전3권),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전4권), ≪세설신어성휘운분(世說新語姓彙韻分)≫(전3권),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봉신연의(封神演義)≫(전9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고사전(高士傳)≫, ≪소림(笑林)≫,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담수(談藪)≫, ≪소설(小說)≫, ≪계안록(啓顔錄)≫, ≪신선전(神仙傳)≫, ≪옥호빙(玉壺氷)≫, ≪열이전(列異傳)≫, ≪제해기(齊諧記)·속제해기(續齊諧記)≫, ≪선험기(宣驗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차례
해설
산정자(刪定者)에 대해

1. 덕행(德行)
2. 언어(言語)
3. 정사(政事)
4. 문학(文學)
5. 방정(方正)
6. 아량(雅量)
7. 식감(識鑒)
8. 상예(賞譽)
9. 품조(品藻)
10. 규잠(規箴)
11. 첩오(捷悟)
12. 숙혜(夙惠)
13. 호상(豪爽)
14. 용지(容止)
15. 자신(自新)
16. 기선(企羨)
17. 상서(傷逝)
18. 서일(棲逸)
19. 현원(賢媛)
20. 술해(術解)
21. 교예(巧藝)
22. 총례(寵禮)
23. 임탄(任誕)
24. 간오(簡傲)
25. 배조(排調)
26. 경저(輕詆)
27. 가휼(假譎)
28. 출면(黜免)
29. 검색(儉嗇)
30. 태치(汰侈)
31. 분견(忿狷)
32. 참험(讒險)
33. 우회(尤悔)
34. 비루(紕漏)
35. 혹닉(惑溺)
36. 구극(仇隟)

옮긴이에 대해

책 속으로
사혜(謝譓)는 함부로 사람들과 교유하지 않아서 집에 잡된 손님이 없었다. 그는 때때로 혼자 취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 집에 들어오는 것은 그저 맑은 바람이고, 나와 마주하고 술을 마시는 것은 오직 밝은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