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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국사 문집
ISBN : 9788964066553
지은이 : 의천
옮긴이 : 박용진
쪽수 : 220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0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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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의천은 고려 왕실에 왕자로 태어났으나 일찍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학구열이 넘친 나머지 왕실과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송나라로 가 불법을 구했다. 송과 일본 등 국외의 여러 종교계 정치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흩어진 교장을 수집하고 강의하는 데 힘썼고 당시의 여러 종파로 갈라진 불교를 천태종으로 통합하려 했으며 숙종의 개혁 정치와 왕권 강화를 도왔다.

그런 의천의 글을 모은 ≪대각국사 문집≫은 문집 20권과 외집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법성사 주지 혜관이 쓴 글씨를 판각한 것으로 해인사 사간판고에 보존되어 있다.
문집은 의천이 쓴 글들을 모은 것으로, 서(序)·사(辭)·표(表)·장(狀)·논(論)·서(書)·소문(疏文)·제문(祭文)·시(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외집은 의천이 송과 요나라 승속으로부터 받은 서한을 모아 놓은 서(書)와 기(記), 시(詩), 비명(碑銘) 등을 모은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 남아 있는 해인사 판본은 결락이 많아 내집 20권에 120장, 외집 13권에 20장, 내집의 21, 22, 23권이 빠져 있다.

≪대각국사 문집≫의 편찬과 대각국사비 수립은 당시의 정치·사회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다. 1126년 이자겸의 난 이후 묘청 계열이 등장했는데 이 시기는 김부식이 정치적으로 묘청을 비판하는 한편 의천계 화엄종과 교류를 확대한 시기로, 서경 세력의 핵심인 묘청에 대한 견제책의 일환으로 의천계 화엄종을 주목했을 법하다. 문벌 귀족 이자겸과 그의 아들 법상종 현화사 의장을 비롯한 불교계와 결탁한 정치세력을 숙청한 인종은 불교계 재편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고 이에 원명국사 징엄을 비롯한 의천계 화엄종 문도는 그들의 정통성 강조와 정체성 확립을 위해 대각국사비를 건립하고 문집을 편찬하는 일련의 불교계 활동을 전개했다.

200자평
천여 년 전, 외국 유학이 가고 싶어 울고불고 떼를 쓰다가 결국은 가출해서 밀항한 한 청년이 있었다. 바로 귀하디귀한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승려의 길을 택한 괴짜 의천이다. 그는 한국 천태종을 개창하고, 바른 불법으로 백성을 계도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대각국사 문집≫은 의천이 쓴 글들은 물론, 그가 받은 시며 편지까지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 소개
의천(義天, 1055∼1101)은 고려 제12대 국왕 문종과 이자연의 장녀 인예왕후 이씨의 넷째 아들로 1055년 9월 28일 궁중에서 태어났다. 의천은 문종 19년(1065) 5월 14일 영통사 난원(爛圓, 999∼1066)의 문하로 출가해 화엄교학을 배웠으며 출가 이후 1985년 송나라에 가기 전까지 교장을 모으고 강론과 수학에 힘썼고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유교나 도교까지 섭렵했다.
1085년 제자인 수개, 양변 등과 함께 송나라에 간 의천은 1085년 5월 21일 변경(汴京)에 들어가 철종 황제를 만나고, 화엄종 승려인 유성, 진수 정원 등을 비롯해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을 방문했다. 의천이 송에서 폭넓게 사상을 교류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사상 체계를 성립한 시기였다.
1086년 14개월여의 입송 구법을 마치고 교장 3000여 권을 수집해서 귀국한 의천은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고 송·요·일본 등지에서 구한 제종교장(諸宗敎藏)을 간행하는 사업에 주력했다.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려 했지만 인주 이씨인 이자의, 흥왕사 지소의 세력에 밀려 해인사에 퇴거했다가 숙종 즉위 이후 개경의 흥왕사로 돌아와 주지가 되어 천태교관을 강학했다. 이 시기 의천의 불교계에서의 역할은 화엄종과 천태종의 병립을 통해 불교계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의천은 백성의 편익을 도모했고,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했으며, 주전(鑄錢)을 건의해 시행하는 등 숙종의 개혁 정치를 도왔다. 숙종 6년 10월 지병으로 총지사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소개
박용진은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대각국사 의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며, 한국사 원강, 고려의 문화와 정치, 고려 왕조 역사 읽기, 한국의 불교문화와 사찰, 인물사 산책 등을 강의했다.
주요 연구 성과로는 <대각국사 의천 연구>, <11∼12세기 원종문류의 유통과 동아시아 불교 교류>, <의천의 화엄일승(華嚴一乘) 사상과 그 불교사적 의미>, <조선시대 간경도감판 ≪오삼연야신학비용(五杉練若新學備用)≫ 편찬과 그 의의>, <고려중기 화엄문류(華嚴文類)의 편찬과 그 사상적 전승−≪원종문류(圓宗文類)≫와 ≪원종문류집해(圓宗文類集解)≫>, <의천집(義天集) ≪석원사림(釋苑詞林)≫의 편찬과 그 의의>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대각국사 문집≫ 권1
원종문류(圓宗文類)를 신집(新集)한 서문
제종교장총록(諸宗敎藏總錄)을 신편(新編)한 서문
성유식론단과(成唯識論單科)를 간정(刊定)한 서문

≪대각국사 문집≫ 권2
□ □ □ □ □(제목 결락)

≪대각국사 문집≫ 권3
국청사(國淸寺)를 신창하고 계강하는 사(辭)
우란분경(盂蘭盆經)을 강경하면서
원각경(圓覺經)을 강경하면서 2수
유교경(遺敎經)을 강경하면서
유교경(遺敎經) 강경을 마치면서

≪대각국사 문집≫ 권5
송나라에 들어가 불법(佛法) 구하기를 청하는 표문
인반사(引伴使)를 보낸 데 감사하는 표문
교외(郊外)에까지 와서 환영해 주심을 사례하는 표문
항주(杭州) 정원 아사리의 처소에 나아가 법을 배우기를 비는 표문

≪대각국사 문집≫ 권6
관반사 차송에 감사하는 표문

≪대각국사 문집≫ 권7
전법에 감사하는 표문
황태후께 사례하는 표문

≪대각국사 문집≫ 권8
본국 문종(文宗)의 초상화[眞容]를 내리신 데 대해 사례하는 표문
황태후께 사례하는 표문
귀국해 사죄하는 표문
죄를 사해 주신 데 감사하는 표문
입궐을 사양하는 표문 2수

≪대각국사 문집≫ 권10
정원법사(淨源法師)에게 올리는 편지 4수

≪대각국사 문집≫ 권11
송나라 정원법사(淨源法師)를 뵙고 드리는 말씀
송나라 정원법사(淨源法師)에게 올리는 편지 3수
송나라 선총법사(善聰法師)에게 주는 편지 3수
송나라 정인법사(淨因法師)에게 주는 편지 2수
송나라 원조율사(元炤律師)에게 답하는 편지

≪대각국사 문집≫ 권12
주전론(鑄錢論)

≪대각국사 문집≫ 권13
내시(內侍) 문관(文冠)에게 주는 편지

≪대각국사 문집≫ 권14
송나라 상국사(相國寺) 성수재(聖壽齋) 축원 소
황태후(皇太后) 성수재(聖壽齋) 축원 소
천태대사(天台大師) 탑에 참배하고 발원하는 소
일본국의 여러 법사에 교장의 구집(求集)을 부탁하는 소
송나라 정원법사(淨源法師)의 백일재(百日齋)에 추도하는 소
세자를 대신해서 교장(敎藏) 수집을 발원하는 소

≪대각국사 문집≫ 권15
순종(順宗)의 기신(忌晨)에 예참(禮懺)하는 소
선종(宣宗)을 대신해 제종교장(諸宗敎藏)을 조인(彫印)하는 소

≪대각국사 문집≫ 권16
문왕(文王) 제문
경덕국사(景德國師) 제문 2수
선종(宣宗) 제문
분황사(芬皇寺) 원효성사(元曉聖師) 제문
용두사(龍頭寺) 우상대사(祐詳大師) 제문
새로 참여한 학도(學徒) 치수(緇秀)에게 보이다
새로 참여한 학도(學徒) 지웅(智雄)에게 보이다
새로 참여한 학도(學徒) 혜수(慧修)에게 보이다

≪대각국사 문집≫ 권17
송나라 원조율사에 화답하다
송나라 정원법사에 화답하다
칠장사 혜조국사의 진영에 예찬하다
고대산 경복사 비래방장의 보덕성사의 진영에 예배하다132
화엄사 연기조사 진영에 예배하다
새로 제수된 대선·대덕에게 보이다

≪대각국사 문집≫ 권18
남산율초를 강의하고 차운해 우연히 한 수를 짓다
국원공이 홍화사에 쓴 시에 화답하다

≪대각국사 문집≫ 권19
삼각산 식암에 쓰다
고산에 돌아가는 익종대사를 송별하다
상공 윤관이 성상(省常)의 결사(結社)에 견주어 뜻을 펴는 시를 보고 감격과 기쁨을 이기지 못해 시로 화답하다
봉선사로 돌아가는 문인 낙진대사를 송별하다
학도대사 도린이 문류 편찬을 사양하므로 시를 지어 권하다
현거사에게 부치다
원각경대참을 삼각산 현도인에게 부치다
모후의 상을 입고 서도[平壤]에 이르러 영명사 부벽요에 오르다
낙진대사의 강을 듣다
화엄별장을 한기거주에게 증정하다
담대사에게 부치다

≪대각국사 문집≫ 권20
회포를 풀다
해인사에 퇴거해 짓다 4수
대궐에 나아가며 옛 절에 대해 쓰다 2수
경진년 6월 4일 국청사에서 천태묘현을 강의한 뒤 학도들에게 보여 말하다

≪대각국사 외집≫ 권1
송나라 철종 황제 조서(詔書) 2수
본국 예종(睿宗) 어제(御製) 대각국사의 진영에 대한 찬(讚)
송나라 유성법사(有誠法師)의 답사(答辭) 3수
송나라 정원법사(淨源法師)의 답사(答辭)

≪대각국사 외집≫ 권2
대송국 양절 전현수조교(大宋國兩浙傳賢首祖敎) 노승 정원(淨源)이 고려국 승통법자(高麗國僧統法子)에게 보내는 편지

≪대각국사 외집≫ 권3
송나라 사문(沙門) 유성(有誠)의 편지 2수
송나라 사문(沙門) 정원(淨源)의 편지 5수

≪대각국사 외집≫ 권4
희중의 편지(希仲書)
송나라 율교사문(律敎沙門) 택기(擇其)의 편지 4수

≪대각국사 외집≫ 권5
변진의 편지(辯眞書)
송나라 사문(沙門) 혜청(慧淸)의 편지 2수

≪대각국사 외집≫ 권6
송나라 사문(沙門) 도형(道亨)의 편지 3수
송나라 사문(沙門) 선총(善聰)의 편지 7수

≪대각국사 외집≫ 권7
송나라 사문(沙門) 종간(從諫)의 편지 4수
송나라 현수교(賢首敎)를 전하는 사문(沙門) 지생(智生)의 편지 2수

≪대각국사 외집≫ 권8
고창국 사문(沙門) 시라부저(尸羅嚩底)의 편지 2수
요나라 어사중승(御史中丞) 야율사제(耶律思齊)의 편지 3수
송나라 사문(沙門) 희중(希仲)의 편지 2수

≪대각국사 외집≫ 권12
고려국 오관산 대화엄 영통사 증시대각국사 비명 병서(高麗國五冠山大華嚴靈通寺贈諡大覺國師碑銘並序)

≪대각국사 외집≫ 권13
남숭산 선봉사 해동 천태시조 대각국사 비명 서(南崇山僊鳳寺海東天台始祖大覺國師碑銘序)

옮긴이에 대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책 속으로
1
함께 만행(萬行)을 닦고 일승(一乘)에 뜻을 같이해 법계(法界)의 문(門)에 소요하고 무위의 경계에 호방 광달해 예속에 구애되지 않으면, 모든 생에 항상 좋은 벗을 얻고 가는 곳마다 서로 좋은 벗이 된다. 나의 말을 너희들이 서로 따르고 너희 마음에 내가 함께 부합해 항상 보현(普賢)의 행(行)을 익히고 원돈(圓頓)의 경(經)을 펴 티끌마다 해탈법문(解脫法門)에 들어가고 글귀마다 비로자나(毗盧遮那)의 성해(性海)를 깨치는 글이 되어 제도함이 없는 제도로 널리 제도하고, 이룸 없는 이룸으로 끝내 이루기를 바란다. 스스로 힘써 이와 같이 하고, 다른 이를 가르침도 또한 그러하니, 맹세컨대 일체 중생과 더불어 다 함께 무상묘각위(無上妙覺位)에 오르는 것이 바로 원하는 바다.

2
대개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같이 여기는 바, 고아나 과부 등 곤궁한 사람들은 오로지 곡물에 의지하는데, 지금 그것을 화폐로 삼으면 좋지 않은 교활한 무리나 이익과 재물을 좇는 사기 치는 자들이 모래와 흙을 섞고 썩고 먹을 수 없는 쌀을 섞을 것이며, 또한 작은되와 큰되를 속이고 가벼운 양과 무거운 양의 속임이 있다면, 선량하고 호소할 곳 없는 백성들은 겨우 몇 되나 몇 홉을 얻어 키로 까불면 날아가고 일고 나면 빠져 없어지는 것이 10의 4, 5가 되니 비록 엄한 형벌에 처해도 그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돈을 사용해 간교함을 끊고 곤궁을 구휼하는 것이 그 이로움의 둘째입니다.

3
부귀영화는 모두 일장춘몽이고
흩어졌다 모이고 있다가도 없으니 모두 물거품 같네
마음을 정토에 두는 것을 제외하면
생각함에 무슨 일을 추구할 수 있으리오

4
석존이 화신을 근본으로 돌리니
남기신 가르침이 동쪽으로 유전했네
지혜를 깨달은 이 드물게 나시어
종풍을 크게 펴시었도다
의상은 화엄의 시조이고
원효는 같은 시대에 사셨네
지금 꽃다운 자취를 계승하신 이는
오직 국사일 뿐이네
왕실의 사랑하는 바를 버리고
오로지 불도에 마음을 다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