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북스 아티클
김일엽 산문집
ISBN : 9788964068267
지은이 : 김일엽
옮긴이 :
쪽수 : 132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1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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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승려의 아내로 살다가 마침내 출가한 여인. 자유연애를 주장한 여성운동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수필가로 소설보다도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김일엽, 그녀의 글을 처음 발표되었던 형태 그대로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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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 김원주는 한국 근대문학 또는 근대문화에 문제적 궤적을 남긴 인물이다. 여기서 근대문학과 함께 근대문화를 말하는 것은 문학 이외의 사회·문화 영역에서 그의 이름이 당대에 가졌던 화제성 또는 문제성 때문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자유연애를 표방한 급진적 여성운동가의 면모를 보였으며 스스로 언명한 자유연애를 실천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이력에 대한 공식적 기록의 이면에는 스스로 표방한 신여성으로서는 비교적 이르다고 볼 수 있는 시기에 연상자와 맺은 혼인과 그 실패에 대한 옹호, 해명의 맥락과 관련된 ‘비극적’ 조건, 그리고 이에 이어진 방종한 애정 행각으로 오해될 소지를 지닌 ‘자유연애’의 도정이 있으며, 여기에 타자에게는 대단히 극적인 반전으로 보일 종교적 인생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문제적 삶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문학적 성취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미하다. <동생의 죽음>의 신체시 효시 논란, 이광수와 비견되는 계몽주의 여성 논객으로서의 면모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가 반생을 승려로 살았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인으로서 그의 여생에서 유일한 장르로 남은 산문이야말로 그 삶의 무게와 깊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근대문학 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문화론적 관점, 풍속사적 미시 관찰, 매체 중심적 독법 등의 새로운 접근 방식 덕분에 대대적인 근대 텍스트 다시 읽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점에서 김일엽의 텍스트는 다시 읽힐 만한 여건을 충족하고 있다. 이미 여성 담론의 측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데, 차제에 문학적 의의와 성취도 더 정치하게 되짚어 보게 될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선집이 최초 매체에 실린 형태를, 허용하는 한 가공 없이 살리고자 하는 의도는 소중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선집에 실린 글들은 김일엽이 남긴 산문의 일부다. 이 중 상당수는 현대어로 손질되어 이미 대중들에게 제공된 바 있는 것이나, 새로 소개되는 글도 일부 있다. 처음 발표된 형태 그대로 다시 책을 엮는 일은 그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자가 많이 섞여 있고 표기 형태가 낯설어, 불편하게 여기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나, 힘들게 읽어 내는 사람에게 보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시 만든 사람에게 보람이 될 것이다. 이 선집을 통해, 일찍이 가족을 모두 여의고 거세게 변화하는 세상에 홀로 서, 정신과 육체의 외로움과 싸우면서, 아울러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고 또 소명을 다하고자 애썼던 한 영특한 인물의 초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으로, 한국 근대문학 또는 근대문화에 문제적 궤적을 남긴 김일엽의 산문집이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승려의 아내로 살다가 마침내 출가한 여인. 자유연애를 주장한 여성운동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수필가로 소설보다도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김일엽, 그녀의 글을 처음 발표되었던 형태 그대로 다시 만난다.

지은이 소개
김일엽은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어느 호칭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전방위 글쓰기를 보여 준 사람이다. 또한 여성운동가, 계몽운동가, 종교인의 면모도 간과할 수 없다. 널리 불렸던 일엽(一葉)은,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유명 여성 문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알려지기도 한 아호인데, 본명은 원주(元周)다. 후일 불가에 귀의하고 얻은 이름은 하엽(荷葉), 도호(道號), 백련도엽(白蓮道葉) 등이나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1896년 6월 9일(음력 4월 28일)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5대 독자이며, 개신교 목사인 용겸(用兼) 씨와 이마대(李馬大) 여사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구세학교와 진남포 삼숭여학교를 다녔는데, 신체시 <동생의 죽음>이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한 해 앞선 1907년에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신체시 또는 신시의 효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09년에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이화학당을 다니던 1915년경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사이 동생 넷도 세상을 떠나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다. 이후 그의 가세를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이 무렵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1918년에는 이화전문을 졸업하며, 이듬해 3·1 운동 때는 전단을 작성해 돌리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어 외할머니의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영화(英和)학교에 다녔는데, 1920년에 이 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한 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해 4호까지 간행했다. 이 무렵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여자 교육과 사회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동아일보≫에 <여자 교육의 필요> 등의 계몽적 주제의 글을 싣는 등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아현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잠시 재직한 적이 있으며,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이은 ‘사랑’의 문제를 둘러싼 방황으로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은 바 있다. 이 무렵 단편소설로, <계시>(1920), <어느 소녀의 사>(1920), <혜원>(1921) 등을, 시로는 계몽적 주제의 창가류에 이어 개인의 애욕과 정서를 표현한 <짝사랑>, <그대여 웃어 주소서> 등을 썼다.
1923년 9월에는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바 있었고, 1927년에는 불교 기관지 ≪불교≫에 관여해 1932년까지 문예란을 담당하면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보여 주었다. 1928년 금강산 서봉암에서 입산하고, 이어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법사 문하에서 수계를 했으며, 1933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득도한 후 이 암자의 입승(入繩)으로 25년 동안 머물렀다. 입산 후 사회생활을 가능한 한 자제한 채, 수도에 전념하다가 1971년 1월 28일 총림원 별실에서 열반했고,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기슭에서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생전에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등의 산문집을 펴냈으며, 열반 직후 유고집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1974)이 간행되었다.

차례
여자 교육(女子敎育)의 필요(必要)
근래(近來)의 연애 문제(戀愛問題)
부인 의복(婦人衣服) 개량(改良)에 대하야 한 가지 의견을 리나이다
L 양(孃)에게
우리의 이상(理想)
의복(衣服)과 미감(美感)
아부님 영전(靈前)에
나의 정조관(貞操觀)
불문(佛門) 투족(投足) 2주년에
오호(嗚呼), 구십 춘광(春光)!
묵은해를 보내면서
신불(信佛)과 나의 가정(家庭)
여인과 서울
노래가 듣고 싶은 밤
1932년을 보내면서
학창(學窓)을 나는 여성(女性)에게 다섯 가지 산 교훈을 졔공한다
아버지와 고향
불도(佛道)를 닥그며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해설자에 대해

책 속으로
우리의 社會가 文明할사록 우리의 家庭의 程度가 놉하질사록 一般 男子의 事業熱이 沸騰할사록 敎育바든 女子를 要求하는 聲이 漸高하옵니다. 그런故로 오늘날 文化의 程度가 날노 놉하지고 社會의 現狀이 때로 複雜하야지는 이 時代에 우리도 남과 가튼 快活하고 健全한 社會를 이루랴면 우리도 남과 갓치 和平하고 安樂한 家庭을 이루랴면 무엇보다도 몬져 女子 敎育의 必要를 提唱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