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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춘부 천줄읽기
ISBN : 9788966805365
지은이 : 박종화
옮긴이 :
쪽수 : 179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2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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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우리는 역사소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볼 수 있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박종화의 ≪대춘부(待春賦)≫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 책은 1955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간행한 ≪대춘부≫(전편·후편 총 2권)를 원본으로 삼아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구성했다. ≪대춘부≫는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량은 어림잡아 원고지 3200매 정도다. 이 중 420매 가량을 발췌하여 실었으니 전체 분량의 1/8(약 13%)에 해당한다. 발췌한 각 장과 제목은 3장 ‘남한산성’, 6장 ‘강화 함락’, 7장 ‘삼학사’, 8장 ‘만고 한’이다. 그렇다고 하여 각 장 전체를 수록한 것은 아니다. 발췌한 부분은 물론 작품의 중심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소설 쓰기를 볼 수 있는 부분이 6장 ‘강화 함락’이 될 것이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역사적 현실의 재구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은 3장 ‘남한산성’이 될 것이며(3장 ‘남한산성’은 제목이 그러할 뿐 주 내용은 임경업과 일지청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작가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은 7장 ‘삼학사’와 8장 ‘만고 한’이 될 것이다. 이 중 8장 ‘만고 한’은 삼전도에서의 굴욕적 항복 의례를 묘사함으로써 당대 우리 민족이 처한 식민지 현실을 떠올리게 하며 7장 ‘삼학사’에는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의로운 죽음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조국애를 고취하려는 작가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대춘부≫는 크게 청의 침략과 조선의 항거, 항복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한 부분과 병자호란 이전의 신장(神將) 임경업의 명성과 활약상, 그리고 조선의 굴욕적 패배 이후 명나라와 손을 잡고 삼전도의 굴욕을 씻고자 하는 임경업과 지사(志士)들의 도전과 실패를 다룬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대춘부≫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은 임경업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 서두에서부터 임경업의 비범한 능력을 제시한다. 염탐하러 온 청의 장수 마부대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든지, 술에 취한 척하다가 갑자기 뛰쳐 일어나 마부대가 보낸 괴한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달아나게 한다든지, 역시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일지청(一枝靑)을 발탁하여 청 태종의 침실에 침입하여 홍모자를 가져온 후 마부대를 조롱하고 청 태종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 등은 임경업의 비범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임경업은 청의 조선 침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청은 한양으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인 의주부를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의주부에는 임경업과 백마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삼전도에서의 굴욕적 항복 이후, 즉 병자호란이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긴 채 끝을 맺은 후, 임경업은 서산대사의 제자인 독보 스님과 더불어 명의 부활을 꿈꾸는 홍승주, 오삼계와 손을 잡고 청에게 당한 국가의 치욕을 씻고자 한다. 불행히도 명장(明將) 홍승주가 청에 항복하고 비밀 계획을 토설함으로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청으로 압송되는 처지가 되지만 임경업의 의기(義氣)는 더욱더 찬란하게 빛난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온 임경업은 역적모의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한다. 향년 53세였다.
작가는 임경업을 제시하여 우리 민족에게 치욕을 가져다 준 청에 대항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의식과 만난다. 작가는 패배감에 휩싸인 우리 민족에게 비범한 능력을 행하는 이상적 인물을 제시하여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려 했다.
여기에 일지청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도입하여 소설적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 임경업과 일지청의 만남과 일지청의 활약상은 작품 전체가 주는 비장함에서 벗어나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소설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김상헌, 이경여, 정온 등의 척화파(斥和派)와 최명길, 장유 등의 친화파(親和派)의 현실 대응 방식,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의로운 죽음을 비롯한 여러 충신과 지사, 열부들의 순절(殉節), 이와 대조적인 강화 검찰사 김경증의 실정과 병자호란 이후 친청파가 되어 임경업을 모함하여 죽게 만들고 효종을 필두로 한 조정의 북벌(北伐) 계획을 청에 밀고하는 김자점의 기회주의적 태도 등은 현실에 맞선 인간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200자평
역사소설가로 많은 작품을 남긴 박종화의 대표작이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모함, 의로운 죽음, 기회주의적 태도 등 현실에 맞선 인간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종화는 이 작품을 통해 식민지 시대 패배감에 휩싸인 우리 민족에게 민족의식의 회복과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했다.

지은이 소개
박종화는 <목 매이는 여자>(1923)를 시작으로 ≪세종대왕≫(1977)에 이르기까지 총 20여 편의 역사소설을 발표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의 외길 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월탄이 처음부터 역사소설을 창작한 것은 아니다. 그는 1921년 <장미촌> 창간호에 시 <오뇌의 청춘>, <우윳빛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 과정을 거치고,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뿐만 아니라 평론,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백조≫에 발표한 단편소설이 신숙주를 주인공으로 한 그의 첫 소설이자 한국 역사소설의 초기 작품으로 여겨지는 <목 매이는 여자>다. 그 후 첫 시집 ≪흑방비곡≫(1924)을 상재(上梓)하기까지 그는 주로 시인으로 활동했다.
월탄이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기는 <매일신보>에 연재된 ≪금삼의 피≫(1935) 이후라 할 수 있다. ≪금삼의 피≫ 이후 ≪대춘부≫(1938), ≪전야≫(1940), ≪다정불심≫(1940) 등 그를 대표할 수 있는 역사소설이 속속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의 본격적인 창작 시기는 월탄 역사소설의 지향점을 시사해 준다. 그가 활발하게 역사소설을 창작하던 시기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던 1930년대 중·후반이다. 그는 역사소설을 통해 훼손된 민족의식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민족애를 일깨우고 민족정기를 드높이고자 했다. 그에게 역사소설은 사회 현실에 참여하는 방법이었으며 나아가 민족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편이었다. 또한 민족을 억압하는 식민지 현실에 저항하는 길이었다. 그는 스스로 천명(闡明)하였듯이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
광복 이후에도 역사소설의 창작은 계속된다. 주요작품으로 ≪임진왜란≫(1954)을 비롯하여 ≪여인천하≫(1959), ≪자고 가는 저 구름아≫(1961), ≪아름다운 이 조국을≫(1965), ≪세종대왕≫(1969)이 있으며 이 밖에도 여러 역사소설이 발표되었다. 위의 작품들이 대부분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므로 각 작품의 면면을 세세히 살펴볼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다. 그것은 당대 현실과의 연관성이다. 월탄은 당대 현실을 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채택하고 그것을 소설화함으로써 당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제시한다. 그의 역사소설은 현실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이며 그의 역사소설이 담지하고 있는 것은 당대의 현실이다. 여기에서 당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나 태도가 어떠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월탄은 역사소설을 통한 사회 참여 이외에 실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 서울신문 사장을 지냈으며 1955년에는 예술원(藝術院)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70년에는 통일원 고문, 1980년에는 국정 자문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이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제1회 문학공로상(1955), 문화훈장 대통령장(1962), 5·16민족상 제1회 문학상(1966),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1970)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대로 위와 같은 이력과 수상 경력은 그를 체제 지향적 인물로 평가하고 그의 역사소설의 가치를 폄하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역사소설이 대부분 신문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다는 이유로 상업적이며 통속적인 작품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어떤 작가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남긴 한국 역사소설의 거목으로서의 월탄의 위상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남한산성
강화 함락
삼학사
만고 한

엮은이에 대해

책 속으로
‘그래도 순되고 소박한 백성들은 마음속 깊이 충성된 기백을 가졌구나!’
‘이 나라 운수가 아주 판막지는 않을 께다!’
오달제 윤집 두 학사는 이렇게 마음으로 든든하게 생각했다
‘이 땅의 백성들, 아름다웁고 거륵하고 의리와 기백 있는 피 끓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더운 더 혼을 가다듬어 정의(正義)에 거꾸러져 죽으리!’
하고 두 학사는 더 한번 단단히 마음을 단속한다.
터벅터벅 남한산성의 만세 소리를 뒤로 두고 삼전도(三田渡) 나룻가를 감도니 해는 벌써 황혼이 가까웠다. 한아(寒鴉)는 어지러이 잘 집을 찾고 건너편 호영(胡營)엔 횃불이 하나씩 둘씩 반짝반짝 켜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