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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우 시선 초판본
ISBN : 9788966806621
지은이 : 박봉우
옮긴이 :
쪽수 : 184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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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박봉우는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90년 작고할 때까지 ≪휴전선≫(1957),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1959), ≪사월의 화요일≫(1962), ≪황지의 풀잎≫(1976), ≪딸의 손을 잡고≫(1987) 등 다섯 권의 시집과, 유고 시선집 ≪나비와 철조망≫(1991)을 포함해 두 권의 시선집을 상재했다. 이 시집들은 한결같이 분단 극복의 주제를 형상화한다. 데뷔작 <휴전선>은 그 출발 지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시는 데뷔작이면서도 동시에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을 만큼 박봉우 시문학의 정점에 해당한다. 여기서 제기된 분단 극복 의지와 민족 화해의 지향이라는 주제는 이후의 시편들에서도 꾸준히 전개된다. 분단 극복 의지와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대한 염원은 박봉우 시인이 평생에 걸쳐,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신화”처럼 떠받든 시적 주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1987년 발표된 그의 마지막 시집 ≪딸의 손을 잡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전쟁아 가거라>, <그날을 어찌 잊으랴>, <휴전선의 나비>, <분단아!>, <우리는 가슴이 아프다> 등이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한 사회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불합리하게 강제될 때, 그 사회에는 억압적인 시대 담론에 저항하는 사회적 광인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인이란 이런 시대의 대표적인 광인들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사유에 저항하고 현실 저 너머의 세계와 소통하며 구원을 꿈꾸는 자,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박봉우 시인은 이런 측면에서 분단 시대를 살아 낸 일종의 ‘사회적 광인’이라 할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요된 전후 시대의 한복판에서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고, 시작(詩作) 활동의 전 기간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시인이 바로 박봉우인 까닭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 등단 이후 줄곧 분단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고 이를 시로써 형상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시는 앞서의 언급대로 형식 차원의 단순성, 유사 주제 의식의 반복 표출, 소박하고 상투적인 표현 기법 등 적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전쟁 이후 남북 대결의 모순적 공간에서 분단 극복 의지와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박봉우의 시적 주제 의식은 그의 시의 형성 원리이자 더 나아가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원리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봉우의 시는 전후 한국 현대시의 시적 대응 방식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하겠다.

200자평
6.25를 겪은 한국 현대시는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쟁 현장의 참혹함, 인간성 상실로 인한 허무감, 강요된 반공 이데올로기…. 그러나 극단적인 갈등으로 가득한 전쟁시들 가운데서 박봉우의 시는 특별하다. 극단적 갈등 대신 분단 극복의 당위성을,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비난보다는 민족 동질성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국가가 분단된 지 어언 60년, 그가 염원하던 통일은 어디에 있을까?

지은이 소개
박봉우 시인은 1934년 전남 광주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광주서중 시절부터 이미 그는 ≪진달래≫ 동인을 결성했으며, 광주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강태열, 윤삼하, 주명영과 4인 공동시집 ≪상록집≫을 간행한 바 있다. 이 무렵의 광주고등학교는 후에 한국 시단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시인들을 다수 배출했는데, 1960∼1970년대 민중 서정시의 계보를 형성한 이성부, 조태일이 박봉우의 고교 후배다. 1952년 고교 2학년 때 ≪수험생(受驗生)≫에 작품을 발표해 미당 서정주와 다형 김현승의 주목을 받았던 박봉우는 당시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졸업 후에도 자주 교류하며 문학적 연대 의식을 이어 갔다. 고교 졸업 후 전남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박봉우는 동인지 ≪영도≫에 참가해 강태열, 박성룡, 정현웅 등과 함께 본격적인 시 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다가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을 투고해 당선된다. 분단의 아픔과 그 극복 의지를 탁월하게 노래한 이 작품의 심사위원은 무애 양주동과 이산 김광섭이었다.
데뷔 1년 후인 1957년 첫 시집 ≪휴전선≫을 정음사에서 간행했다. 이어서 1959년 둘째 시집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를 백자사에서 발표하고, 1962년에는 셋째 시집 ≪사월의 화요일≫을 성문각에서 출판한다. 넷째 시집 ≪황지의 풀잎≫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기까지는 무려 1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또한 그의 다섯째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딸의 손을 잡고≫는 그로부터 11년 후인 1987년 사사연에서 발간된다. 이처럼 시집 발표 시기의 편차가 심한 것은 박봉우 시인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시인은 대학을 마치고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전남일보에 입사한다. 이때 그는 ≪전남일보≫ 서울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취재차 전남 목포에 갔다가 그 지역의 폭력배들에게 끔찍한 구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정신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형편에 놓인다. 덕분에 일상생활도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김현승 시인의 주례로 당시로는 늦깎이 결혼을 해서 슬하에 세 자녀를 두기는 했으나, 결혼 생활은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의 후기 작품 세계의 상당 부분이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아비의 사무치는 부정(父情)으로 넘쳐 나는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박봉우 시인은 1990년 3월 2일, 만 56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다. 생전에 시인은 전라남도 문화상(1957)과 현대문학상(1962)을 수상했다.

차례
≪휴전선≫
나비와 鐵條網
新世代
思美人曲
窓은
休戰線
花草들의 이야기
抵抗의 노래
思春記
果木의 受難
능금나무
果樹園
受難民
音樂을 죽인 射擊手
石像의 노래
눈길 속의 카츄샤
당신의 눈
山菊花
바다의 思想과 微笑
목숨의 詩
바위
新綠 地帶
餘白
俯瞰圖
蒼白한 病院
사랑 뒤에 오는 餘白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
惡의 봄
都市의 무덤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
孤獨한 旅行者
黑室 素描
病情 葉書
古宮 風景에서
어느 旅人宿
사랑 뒤에 오는 餘白
검은 寢室
陰謀 日誌
死守派
뒷골목의 受難史

≪사월의 화요일≫
1 素描
2 素描
3 素描
5 素描
6 素描
9 素描
10 素描
13 素描
14 素描
33 素描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陽地를 向해
참으로 오랜만에
兩斷된 戀人들
젊은 火山

≪황지의 풀잎≫
서울 下野式
窓이 없는 집
경제학 교수 휴강
荒地의 풀잎
진달래꽃
1960年代의 휴지통과 詩論

≪딸의 손을 잡고≫
내 딸의 손을 잡고 1
내 딸의 손을 잡고 2
겨울 포장집의 아내
쓰레기통의 대조각가
신화
휴전선의 나비
分斷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 속으로
●나비와 鐵條網

지금 저기 보이는 시푸런 江과 또 山을 넘어야 진종일을 별일 없이 보낸 것이 된다. 西녘 하늘은 薔薇빛 무늬로 타는 큰 눈의 窓을 열어… 지친 날개를 바라보며 서로 가슴 타는 그러한 距離에 숨이 흐르고.

모진 바람이 분다.
그런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비 한 마리의 상채기. 첫 고향의 꽃밭에 마즈막까지 의지할려는 강렬한 바라움의 香氣였다.

앞으로도 저 江을 건너 山을 넘으려면 몇 ‘마일’은 더 날아야 한다. 이미 날개는 피에 젖을 대로 젖고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 간다 목이 빠삭 말라 버리고 숨결이 가쁜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敵地.

壁, 壁… 처음으로 나비는 壁이 무엇인가를 알며 피로 적신 날개를 가지고도 날아야만 했다. 바람은 다시 분다 얼마쯤 나르면 我方의 따시하고 슬픈 鐵條網 속에 안길,

이런 마즈막 ‘꽃밭’을 그리며 숨은 아직 끝나지 않했다 어설픈 표시의 壁. 旗여…

 

●휴전선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風景. 아름다운 風土는 이미 高句麗 같은 정신도 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체 休息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四月의 피바람도 지나간
受難의 都心은
아무렇지도 않은
表情을 짓고 있구나.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갈라진 가슴팍엔
살고 싶은 武器도 빼앗겨 버렸구나.

아아 저녁이 되면
自殺을 못하기 때문에
술집이 가득 넘치는 都心.

藥보다도
이 고달픈 이야기들을 들으라
멍들어 가는 얼굴들을 보라.

어린 四月의 피바람에
모두들 위대한
훈장을 달고
革命을 모독하는구나.

이젠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가야 할 곳은
여기도,
저기도, 病室.

모든 自殺의 集團. 멍든
旗를 올려라
나의 病든 ‘데모’는 이렇게도
슬프구나.

 

●휴전선의 나비

어데로 가야 하나
어데로 날아가야 하나
피 흘리며 찾아온 땅
꽃도 없다
이슬도 없다
녹슨 철조망 가에
나비는
바람에 날린다
남풍이냐
북풍이냐
몸부림 몸부림친다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고층 빌딩이 아니다
그보다도 더 가난한 노래다
심장을 앓은
잔잔한 강물이다
바다이다
한 마리 나비는 날지 못하고
피투성이 된 채로
확 트인 하늘을 우선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