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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시선 초판본
ISBN : 9788966803774
지은이 : 조명희
옮긴이 :
쪽수 : 158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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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벌써 100년이 흘렀으며, 한국 근대 문학의 태동과 전개 역시도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근현대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도전과 의문들 속에서 조명희 문학은 철저하게 배제되었거나, 너무 늦게 문학 연구자의 관심을 받게 되어 문학사적인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명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나라인 소련으로 망명한 작가였다는 정치적인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며, 부차적으로는 ‘조명희를 조선의 작가로 볼 수 있는가?’라는 배타적 민족 문학의 시각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희는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과 KAPF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논의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도쿄 유학 시절에 결성한 ‘극예술협회’가 초연한 <김영일의 사>는 조명희가 쓴 연극 대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희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소설가 고리키와 톨스토이에 경도되어 당대 현실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서술해 낸 <낙동강>은 조명희를 대표하는 소설이자, 일제 식민지 현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계급적이면서도 민족적인 현실 인식을 제대로 형상화해 낸 KAPF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나라 세 번째 창작 시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봄 잔듸밧 위에≫나 연해주 망명 전까지 썼던 사실주의 경향의 시들, 연해주로 정치 망명한 후 쓴 여러 산문시들과 동요시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문학사적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물론 <짓밟힌 고려>와 같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이 민족적 정체성을 환기한 시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졌지만, 문학성 그 자체보다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없지 않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디아스포라 문학을 상정한다면, 조명희는 근대 문학의 디아스포라 작가로 손꼽을 만하다.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 청년기를 보내고, 도쿄 유학 시절에 서구 근대 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했으며, 다시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와 KAPF 문학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해 소비에트 조선 문학을 일으켜 세운 이력 속에서 경계에 선 디아스포라 경험이야말로 조명희 문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명희는 근대 문학의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선구적인 문학 활동을 펼쳐 보이지만, 시만큼 작가의 디아스포라 이력을 잘 나타내는 문학 작품도 없을 것이다. 도쿄 유학 시절에 관념적 자연을 노래한 시, 식민지 조선으로 되돌아와 궁핍한 현실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경성의 삶을 형상화한 시, 망명 후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며 노래하는 시 등 조명희 시들은 작가가 경험하는 탈경계적 삶의 궤적을 관통하며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선율을 따라 조명희 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유랑해 보자.

200자평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희곡을 썼다. 카프 문학의 선구자였고 그의 시집은 출간된 근대 창작 시집으로는 첫 번째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잊혔다. 도쿄에서도 조선에서도 소련에서도 디아스포라였던 식민지의 청년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도 갈 곳을 찾지 못했다. 보들레르도 타고르도 아닌 그저 ‘조선 혼의 울음소리’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포석 조명희. 이제 그의 시가 본향을 찾는다.

지은이 소개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는 1894년 8월10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서, 선비이며 학자인 아버지 조병행과 연일 정씨 어머니 사이에서 4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자(字)는 경덕(景德), 호적명은 명희(明熙), 애칭은 칠석이었다.
네 살 때 부친인 조병행이 죽고 난 후, 조명희는 둘째 형 조경희 집에 머물며 어머니로부터 한글을 배우고,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기도 했다. 진천소학교에 다니며 열네 살에 충북 서산에 사는 여흥 민씨 집안의 딸인 민식(閔植)과 혼인을 하게 된다. 1914년 한여름,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반이었던 조명희는 북경사관학교로 떠나려다가 평양에서 둘째형 경희에게 잡혀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신소설을 읽었고, <홍루몽>, <삼국지> 등 많은 중국 소설도 접하게 된다. 특히 ≪매일신보≫에 연재되던 민우보 역의 ≪희무정(噫無情, 레미제라블)≫에 빠져 지냈으며, 이광수의 ≪무정≫ 등 근대 소설과 ≪태서문예신보≫, ≪창조≫, ≪삼광(三光)≫ 등 근대 잡지를 접하게 되면서 ‘문예’에 눈뜨게 된다.
1919년 3월 초, 3·1 만세 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히고 난 후, 조명희는 5년간의 고향 생활에서 벗어나 일본 도쿄로 가 도요대학 인도철학윤리학과에 입학한다. 경제적 사정과 언어 소통, 문화 차이의 어려움을 겪으며, 학비 문제로 고생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괴테를 읽고 타고르와 하이네를 읊었다. 친하게 지내던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1920년 봄 도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근대극 연극 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창설한다. 1921년 여름에는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인 동우회의 전국 순회 연극단의 공연 작품으로 조명희가 쓴 <김영일의 사>가 채택되어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 연극 대본은 한국 근대 문학 최초의 창작 희곡으로 가난한 도쿄 유학생의 비극적 삶을 그린 조명희 자신의 자전적 작품이다.
친구들과 연극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명희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3년 반 만에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귀국 다음 해에 상경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고, 노적(蘆笛)이라는 아명으로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간하게 된다. 일본에 가기 전 고향집에서 썼던 시들과 도쿄 유학 시절의 시들을 모은 이 시집은 근대 문학 사상 개인 창작 근대 시집으로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이학인의 ≪무궁화≫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
1925년 8월에 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한 조명희는 ≪개벽≫에 <땅속으로>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새로운 문인 생활을 시작하고 1927년 7월 ≪조선지광≫에 단편 <낙동강>을 발표하면서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선구적 작가가 된다. <낙동강>은 낙동강 어부의 손자이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성운(농업학교 졸업, 군청 농업 조수)이 3·1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에 갇히더니, 출옥한 이후에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조명희의 경성 생활은 일제 식민 통치 속의 숨 막히는 압박감과 불안감, 헤어날 길 없는 가난으로 점철되었다.
1928년 8월 조명희는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는 이전의 서정시와는 다른 분위기의 산문시 <짓밟힌 고려>를 ‘조생’이란 필명으로 세상에 발표하게 된다. 이 시는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 의지를 담고 민족 해방과 계급 투쟁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후 조명희는 조선인 육성촌에서 조선어 교사로 있으면서 문예를 지도하며, 동화극 <봄 나라>, 동요 <눈싸움>, <샘물>과 같은 작품들을 쓰게 된다. 1930년 동료 교사인 황명희와 재혼하고, 우수리스크로 이사해 조선사범전문학교에서 조선어문학을 강의하게 된다. 당시에 그가 쓴 시, 소설, 정론, 평론 등의 작품들은 소비에트 조선 문학의 방향성을 보여 주었다.
1934년에는 작가 파제예프 추천으로 소련작가동맹 맹원으로 가입했으며, 연해주의 한국신문 ≪선봉≫의 문예면 편집을 자문하게 된다. 이듬해 하바롭스크로 이사한 후 조선사범대학의 교수로 재직한다. ≪선봉≫ 신문에 문예란을 만들고, 자신의 한글 및 문학 교육을 받아 창작된 한글 문학 작품들을 모은 ≪로력자의 조국≫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조명희는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수리스크 인근 연해주 또는 빨치산스크 등지에서 많은 제자들을 문학가로 길러 냈다.
1937년 장편소설 ≪만주 빨치산≫ 집필 도중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기관원에 연행되고, 가족은 스탈린의 ‘고려인 시베리아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게 된다. ≪만주 빨치산≫의 내용은 중국 동북 지방에서 조국(조선)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듬해에 소련 당국으로부터 일제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하바롭스크 현지 주르사 감옥에서 처형당한다.
1956년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정권 때, 소련 극동군관구 군법회의는 1938년 4월 15일의 결정을 파기, 무혐의로 처리하고 조명희를 복권시켰다. 1959년 12월 10일에 조명희문학유산위원회에서 편찬한 ≪조명희 선집≫이 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에서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
1988년 한국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을 해금 조치함으로써, 조명희에 대한 문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차례
≪봄 잔듸밧 위에≫
<봄 잔뒤밧 위에>의 部
成熟의 祝福
驚異
無題

봄 잔듸밧 위에

내 못 견데여 하노라
人間 肖像 讚
달좃차
동무여
새봄
불비를 주소셔
感激의 回想

<蘆水哀音>의 部
떠러지는 가을
孤獨者
누구를 차저
아츰
나의 故鄕이
因緣
나그내의 길
孤獨의 가을

<어둠의 춤>의 部
별 밋흐로
淚의 神이여
한숨
어린 아기
生命의 수래
生의 狂舞
닭의 소리
血面鳴音
夏夜曲(故鄕에서)
太陽이여! 生命이여!
알 수 업는 祈願
賣肉店에서
不思議의 生命의 微笑
내 靈魂의 한쪽 紀行
分裂의 苦
눈[雪]

스핑스의 悲哀
煩惱
엇던 동무
원숭이가 색기를 나앗슴니다
永遠의 哀訴(故鄕에서)
신문·잡지 발표작
短章
記憶하느냐
가을
‘어둠의 검’에게 바치는 序曲
온 저자ㅅ사람이
바둑이는 거짓이 업나니
어린 아기
나에게-反省의 樂園을 다고-
세 식구
짓밟힌 고려
십월의 노래
(볼세비끼의) 봄
녀자 공격대
맹서하고 나서자
‘오일’ 시위 운동장에서
아우 채옥에게
까드리여, 너이의 짐이 크다!
아무르를 보고서
공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 속으로
●세 식구

어린 딸. “아버지, 오날 학교에서 엇던 옷 잘 입은 아이가 날더러 떠러진 치마 입엇다고 거지라고 욕을 하며 옷을 찌저 노켓지. 나는 이 옷을 입고 다시는 학교에 안 갈 터이야.”
아버지. “가만잇거라. 저 기럭이 소리 난다. 깁흔 가을이로구나!”
안해. “口腹이 원수라! 또 거짓말을 하고 쌀을 꾸어다가 저녁을 하엿구려. 마음에 죄를 지여 가며…”
남편. “여보. 저 기럭이의 손자의 손자가 안진 여울에 우리의 해골이 굴너 내려갈 때가 잇슬지를 누가 안단 말이요.
그러고 그 뒤에, 그 해골이 엇지나 될가?
또 그 기럭이는 어대로 가 엇지나 되고?…
나도 딱한 사람이요마는, 그대도 딱한 사람이요.
그러나 우리의 한 말이 시럽슨 말이 아닌 줄만 알어 두오.”

●짓밟힌 고려

일본 제국주의의 무지한 발이
고려의 땅을 짓밟은 지도 발서 오래이다.

그놈들은 군대와 경찰과 법률과 감옥으로
온 고려의 땅을 얽어 놓앗다.
칭칭 얽어 놓앗다-온 고려 대중이 입을 눈을 귀를 손과 발을.
그리고 그놈들은 공장과 상점과 광산과 토디를 모조리 삼키며
노예와 노예의 떼를 몰아 채즉질 아래에 피와 살을 사정없이 글어 먹는다.
보라! 농촌에는 땅을 잃고 밥을 잃은 무리가
북으로 북으로, 남으로 남으로, 나날이 쫓기어 가지 안는가
뼈품을 맞아도 먹어지지 않는 그 사회다. 도외에는 집도 밥도 없는 무리가 죽으러 가는 양의 떼같이 이리저리 몰니지 안는가
그러나, 채즉은 오히려 더 그네의 머리 우에 떨어진다-
순사에게 눈 흘긴 죄로, 디주에게 소작료 감해 달라는 죄로, 자본주에게 품값 올려 달라는 죄로.
그리고 또 일본 제국주의에 반항한 죄로, 쁘로레따리아트를 위하야 나와 가며 일하는 죄로.
주림과 막대에 시달려 빼, 말은 그네의 몸둥이 위에는 모진 채죽이 던져진다.

어린 ‘복남’이는 저의 홀어머니가 진고개 왜놈에게 종노릇하느라고 만나지 못하야 보고 싶다고 운다
젊은 ‘순이’는 산같이 믿던 저의 남편이 품파리하려 일본 간 뒤에 몇 년이나 소식이 없다고 ‘강곡구베야’에서 죽엇는가 보다고 감독하는 왜놈에게 총살당하엿나 보나고. 왜놈의 밥솟에 불을 집혀 주며 한숨 끝에는 눈물짓는다
아니다. 이것은 아직도 둘째다
기운 씩씩하고 말 잘하던 인쇄 직공 공산당원 ‘성룡’의 늙은 어머니는 어느 날 아츰결에 경찰서 문턱에서 매 맞아 죽어 나오는 아들의 시테를 부등켜안고 쓰러졋다-그는 지금 꿈에도 자긔 아들의 일홈을 부르며 운다
아니다 또 있다
십 년이나 두고 보지 못하던 자긔 아들이 정치범 미결감 삼 년 동안에 옷 한 벌 밥 한 그릇 들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한번 보겟다고 천 리 밖에서 달려와 공판정으로 기여들다가 무지한 간수 놈의 발길에 채여 땅에 잡버저 구르며 한울을 치어다보아 탄식하는 쉰 머리의 로인도 있엇다
이것뿐이냐! 아니다
온 고려 쁠로레타리아의 동무-몇 천의 동무는 왜놈들의 악독한 주먹에 맞아 죽고 병들고 쇠사슬에 매어 감옥으로 갓다
그놈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형과 아오를. 아니, 온 고려 뿌로레타리아트를 박해하랴 든다

고려의 쁘로레타리아 그들에게는 오직 죽임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임과 죽음!
그러나 우리는 락심치 안는다. 우리의 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뼈만 남은 주먹에는 원수를 꺽구려트리랴는 거룩한 마음의 싸움의 힘이 숨어 있음을 믿기 때문에.
옳도다. 다만 이 싸홈이 있을 뿐이다.
칼을 칼로 갚고 피는 피로 씻으랴는 싸홈이. 힘쎄인 뿌로레타리아트의 새 긔ㅅ대를 높이 세우랴는 거룩한 싸홈이!
그리고 우리는 또 믿는다
죽음의 골작이 죽음의 산을 넘어
그러나 굳건한 거름으로 거러 나가는 온 세게 뿌로레타리아들의 상하괴 싶슴인 몇 억만의 손과 손들이
저 동쪽 하늘에서 붉은 피로 물든인 태양을 떠밀어 올린 것을
거룩한 뿌로레따리아트의 세상이 올 것을 굳게 믿고 나간다!

●우리들의 詩

우리들은 時代의 苦痛을 倦怠를 닛기 爲하야 詩를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저들의 無智를 錯誤를 비웃기 爲하야 詩를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사랑의 對象을 또는 니저 준 사람을 찾기 爲하야 詩를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鄕土의 呪咀를, 都市의 憎惡를 살우기 爲하야 쓰는 것이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럿타고 祖上으로부터 傳하야 오는 가느다란 情緖를 노래하기 爲하야 쓰는 것은 勿論 아니다.

우리들의 詩는
神을 밋는 것이 아니요
꿈을 쫏는 것이 아니요
또는 달콤한 人生의 香氣를
오늘의 泰平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奇蹟을 幻想을 눈물을 歡樂을 몰은다
×
‘삶’은 힘이다!
힘은 歷史를 낫는다!
우리들은 그 힘을 밋고
그 힘으로써 가저와 줄 歷史를 밋는다

힘! 그 偉大한 힘이 現實의 위를 다름질할 때 우리들은 크나큰 嚮動을 밧는다
이것이 우리들의 詩다!

우리들의 詩는
兄弟에게 보내는 傳令이다!
姊妹에게 보내는 誡銘이다!
또는 우리들 自身에 내리는 宣言이다!
그럿타! 우리들 自身에 내리는 宣言이다!

우리들은 이 宣言으로 말미암아 自身의 나아갈 길을 찻고 明日이 歡喜를 늣긴다
그들이 街頭에 行列 지을 때
우리들의 詩는 行進曲이 된다
그들이 東西에서 서로 불을 때
우리들의 詩는 信號가 된다
天嶺을 넘어
大洋을 건너
서로 傳하는 信號가 된다

이 信號 가온대
우리들의 힘은 커 간다
우리들의 歷史는 잘아 간다
그리고 우리들의 詩는 더욱더 빗나 간다

들으라!
傳令을
誡銘을
宣言을
그리고 또 信號의 信號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