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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선 초판본
ISBN : 9788966803811
지은이 : 이육사
옮긴이 :
쪽수 : 108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4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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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이육사의 시 세계는 창조적 관조의 미의식이 중심 음을 이룬다. 창조적 관조는 항일운동에 매진했던 자신의 체험적 삶의 현실로부터 스스로 미적 거리를 확보하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그 궁극적 의미를 재인식하고 삶의 지향성을 높은 차원으로 열어 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는 마침내 절망의 현실 속에서 자기 초극의 언어와 예언적 지성을 노래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는 항일운동가의 급박한 실천적 삶 속에서도 마음의 균정을 잃지 않고 그 본원적 의미와 가치를 탐색하는 거경궁리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육사의 직계 조상이기도 한 퇴계 이황은 궁리에 대해 “같은 것에 나아가서도 다른 것이 있음을 알고 다른 것에 나아가서도 같은 것이 있음을 보아야 하며, 둘로 나누어도 일찍이 분리되지 않는 것을 해치지 아니하며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도 실제로는 서로 뒤섞이지 않는 데 귀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거경의 정신을 바탕으로 추구하는 일관되면서도 유연하고 입체적인 궁리의 방법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육사의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수렴/확산, 소멸/생성, 부정/긍정 등 불연속성의 연속성이나 역설적이고 탄력적인 시적 인식론은 이러한 거경궁리의 정신과 자세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가 극명한 고통의 표상인 수인 번호였던 이육사(二六四)를 자신의 필명 이육사(李陸史)로 새롭게 전환한 역설적인 면모도 거경의 유연하고 입체적인 관조적 객관화에서 연원한다.
또한 그의 시적 삶은 거경궁리의 극점에서 활연관통의 경지를 타파해 나가는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의 시적 정신사의 지형은 1930년 <말>을 통해 등단한 이래 <絶頂>을 분수령으로 해 <꽃>, <曠野>, <靑葡萄> 등에 이르면 활연관통의 직관을 통한 예언자적 지성이 본격적으로 노래되고 있다. 특히 <曠野>에서 신화적 무한으로 치닫는 활연관통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다시 千古의 뒤”에 새롭게 현현될 역사적 신성성을 직시하는 예언자적 확신의 노래로 펼쳐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육사의 예언자적 지성은 비단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의 의미로 국한되지 않는다. 천지인 삼재 원리를 관통하는 기원 신화의 신성성은 다시 “千古”의 뒤로 이어지는 유구한 미래 역사의 창조적 재현의 원형적 주술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육사의 거경궁리와 활연관통의 시 세계는 고답적인 과거형이 아니라 오늘날의 노래이며 미래형의 노래로서 영원성을 지닌다.

200자평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가이며 선비적 지절(志節)의 세계관을 웅혼한 어조로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 이육사의 시를 모았다. 유학적 수양의 이론적 방법론과 실천에 해당하는 거경궁리와 활연관통의 세계관을 통해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지은이 소개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의 형제 중 다섯째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월북 이후 1950년대 초 숙청당한 이원조다. 어릴 때 조부 이중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에 신학문을 접한 보문의숙을 졸업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대학 상과에 입학해 7개월간 다녔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 일본 경찰이 장진홍이란 인물은 물론 단서조차 잡지 못하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해 법정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육사를 비롯해 원기·원일·원조 등 4형제가 함께 검거되었다. 원기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미결수 상태로 1년 반을 넘겼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 1월 3일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시인 신석초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같은 해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했다.
1940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퉁(東廠胡同) 1호에서 사망했다.

차례

春愁三題
黃昏
失題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海潮詞
路程記
草家
江 건너간 노래
小公園
鴉片
年譜
少年에게
南漢山城
湖水
靑葡萄
絶頂
班猫
狂人의 太陽
日蝕
喬木
西風
獨白
娥眉
子夜曲
서울
芭蕉
曠野

나의 뮤−즈
邂逅

畵題
잃어진 故鄕
蝙蝠
바다의 마음
무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 속으로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山脈들이
바다를 戀慕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곧을 犯하든 못하였으리라

끈임없는 光陰을
부지런한 季節이 픠여선 지고
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

지금 눈 나리고
梅花 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 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 노아 부르게 하리라

-<曠野>, 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