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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ISBN : 9791130412283
지은이 : 토마스 만
옮긴이 : 윤순식
쪽수 : 186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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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토마스 만의 문학 인생을 다섯 단계로 나눌 때, 제1기인 1903년에 나왔다. 이때 그는 ‘예술성과 시민성의 갈등’으로 고뇌하고 있었다.
‘문학은 결코 천직(天職)이 아니라 저주’라고 하는 섬뜩한 표현이 들어 있는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1875∼1955)이 28세 때 발표한 작품이다. 이미 25∼26세 때 불후의 장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세상을 놀라게 한 터여서 ≪토니오 크뢰거≫는 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잘 알다시피 토마스 만은 괴테를 좋아했고 자기 문학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래서 괴테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베르터를 죽이고 바이마르로 떠나가서 그곳에서 고전주의의 중심인물로 되었던 것처럼,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3, 4세대 토마스 부덴브로크와 하노 부덴브로크를 파멸시킴으로써 예술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재충전의 전기로 삼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온 그 작품이 ≪토니오 크뢰거≫였다.
토마스 만은 ≪토니오 크뢰거≫를 ‘나의 베르터’라고 표현했다. 그는 ≪토니오 크뢰거≫의 성립에 관해, 그 구상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고 있던 시기에 했으며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뤼베크를 경유한 덴마크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말한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통해 죽음의 극복을 시도했다고 한다면 ≪토니오 크뢰거≫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을 시도했다. 즉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삶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죽음(정신)에 대하여 거부할 수 없는 하노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토니오 크뢰거≫에서 정신을 본질로 하고 있으면서 삶에 대해 끊임없는 동경을 하는 토니오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토니오는 그 자신의 ‘순수하지 못한 양심’으로 고뇌하는 작가이자,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일상적 삶을 회피하면서도 삶에서의 도피를 배반으로 느끼는 예술가다. 그에게 문학은 ‘결코 직업이 아니라 저주’다. 토니오는 “언어란 인간의 감정을 해방시켜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차갑게 만들어 얼음 위에 올려놓는 도구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토니오에게 예술가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감정이란, 따뜻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란, 언제나 진부하고 쓸데없는 것일 수밖에 없어요. 예술적인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타락한 신경 조직, 가식적인 신경 조직에서 비롯되는 불안·초조감과 차디찬 황홀경일 따름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일상의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나 비인간적인 것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이상하게도 인간적인 것과는 동떨어져 아예 관계 자체를 맺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고 읊조린다.
이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속편이라 할 수 있으며, 죽지 않고 살아서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하노의 고백’ 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토마스 만적 ‘젊은 베르터의 고뇌’다. 건실하고도 경건한 북독일 시민이었던 아버지의 가업과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어머니로부터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은 토니오 크뢰거는 남쪽 지방 뮌헨으로 내려와 타락과 온갖 모험을 일삼는다. 그러나 그는 남독일 사람들의 예술가인 척하는 태도와 냉혹성보다도 북쪽 자기 고향 사람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된다.

200자평
토마스 만은 <토니오 크뢰거>를 '나의 베르터'라고 표현했다. 그는 <토니오 크뢰거>의 성립에 관해, 그 구상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고 있던 시기에 했으며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뤼베크를 경유한 덴마크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말한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통해 죽음의 극복을 시도했다고 한다면 <토니오 크뢰거>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을 시도했다. 즉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삶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죽음(정신)에 대하여 거부할 수 없는 하노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토니오 크뢰거>에서 정신을 본질로 하고 있으면서 삶에 대해 끊임없는 동경을 하는 토니오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지은이 소개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만은 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업가였던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네덜란드 영사, 시 의원, 부시장을 지내며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린 인물이었고 어머니 율리아는 독일인 아버지와 포르투갈계 브라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었다. 형 하인리히 만 역시 <충복>, <오물 선생> 등을 집필한 소설가였다. 훗날 토마스 만은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 “잘 보살핌 받아 행복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1905년 뮌헨대학교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 프랑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를 낳았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그에게는 학업보다 독서 체험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고등학교 때는 하이네, 폴 부르제, 헨릭 입센 등을 읽었고 스무 살 이후에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898년 첫 책으로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출간하였고 1901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 장편 소설은 1929년 토마스 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을 시작점으로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독일 공화국에 관해서> 등 정치적 주제를 견지한 글을 썼으며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민주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강연 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자 2월부터 망명에 들어갔으며 1936년 독일 국적과 본 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박탈당했다.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하고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을 받아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게 되었다. 1952년 매카시 위원회가 그를 공산주의자로 지목한 것을 계기로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1955년 사망했다. <마의 산>과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외에 주요 작품으로는 <트리스탄>, <대공 전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요셉과 그의 형제들>, <바이마르의 로테>, <파우스트 박사>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윤순식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독일어 전임 교수를 역임했고,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박사 후 연수 과정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현대 독문학을 연구하였으며, 한양대학교 연구 교수를 역임하고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토마스 만의 소설 ≪魔의 山≫에 나타난 反語性 考察」, ≪부덴브로크 일가≫에 나타난 아이러니 연구>, <작품 내재적 해석학으로서의 독어독문학>, <현대 독일어권 문학에 나타난 병의 담론>, <상상력과 현대 사회에 대한 다층적 해석>, <병과 문학>, <자아 탐색과 과거 극복> 등 다수가 있다. ≪아이러니≫, ≪토마스 만≫, ≪전설의 스토리텔러 토마스 만≫(공저)을 지었으며,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헤르만 헤세의 ≪로스할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공역),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토니오 크뢰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 속으로
그렇다고 해서 이야깃거리가 전혀 없다든지,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겪은 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향에서, 내 고향 도시에서는 심지어 경찰에 체포될 뻔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는 나중에 직접 얘기하겠습니다. 요즘 들어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일반적인 것을 괜찮은 방식으로 말해 보고 싶은 날이 자주 있거든요.
리자베타, 언젠가 당신이 나를 가리켜 시민, 길을 잘못 든 시민이라고 말한 것을 아직 기억하겠지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이름 붙여 준 것은 내가 그전에 무심결에 해 버린 이런저런 고백들에 휩쓸려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고백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그 말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의 시민성과 ‘삶’에 대한 나의 사랑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는 걸 과연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그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나의 선친은 북쪽 기질을 갖고 계셨습니다. 청교도 정신에서 나온 명상적이고 철저하며 정확한 성품을 지녔고 곧잘 우수에 잠기기도 하셨지요. 반면에 나의 어머니는 불확실한 이국적 혈통을 물려받으셨고,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순진하셨고, 동시에 조심성이 없었고 정열적이었으며 충동에 따라 분방하게 사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두 분의 혼합인 내가 예사롭지 않은 가능성들 ―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위험성들 ―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혼합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예술의 세계 속으로 길을 잘못 든 시민, 훌륭한 가정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예술가입니다. 정말이지 모든 예술성 속에서, 온갖 이례적인 것과 모든 천재성 속에서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 매우 모호한 것, 매우 불명예스러운 것, 매우 의심스러운 것을 꿰뚫어 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시민적 양심입니다. 또한 나로 하여금 단순한 것, 진실한 것, 편하고 정상적인 것, 비천재적인 것, 단정한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등으로 가득 채워 주는 것도 바로 이 시민적 양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