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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원 평론선집
ISBN : 9791130457710
지은이 : 이숭원
옮긴이 :
쪽수 : 207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5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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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이숭원은 오로지 자신의 경험적 감동 속으로 수렴해 들어오는 정신적 고양의 순간을 중요하게 여겼고, 서늘한 인식의 전회를 선사하는 작품들을 애써 옹호해 왔다. 그 점에서 감동과 위안은 이숭원 비평이 시를 선별하고 평가하는 쌍끌이 좌표다. 그만큼 그는 시에 대한 감동과 위안의 힘으로 비평의 평균화와 비속화에 저항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감동과 위안의 내질은 사실상 순연한 슬픔에서 발원하고 그 슬픔으로 귀일하는 특성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이숭원이 개개 시편에서 발견하는 그 슬픔이란, 삶의 구체성 속에서 찾아오는 상처나 정치 경제적 구조에서 오는 고통 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상황적 슬픔이 아니라 철저하게 생래적이요, 존재론적인 슬픔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것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글썽임 같은 것일 터이다. 이처럼 이숭원 비평은 오랜 시간 동안 순연한 슬픔을 근간으로 하는 본원적 서정을 탐구하면서,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지닌 채 펼쳐져 왔다. 이러한 일관성 위에서 그는 문학사적 감각을 덧보태 개개 작품이 평지돌출의 산물이 아니라 종으로 횡으로 엮여 있는 상호 연관의 텍스트임을 밝혀내는 데 공을 들인다. 가령 우리 시 비평의 문제점이 문학사적 감각을 결락한 채 동시대적 감각으로만 해석과 평가에 임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그의 균형 어린 비평적 태도는 매우 중요한 시사가 될 것이며, 이 점은 매우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비평가 이숭원은 이렇게 가장 충실한 경험적 독자로서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비평가로서의 정직성과 투명성을 통해 ‘비평’이라는 것이 이론적 분식이나 난해한 개념으로의 번안이 아닌 시적 형상 자체의 결을 따라가는 섬세한 감동과 위안의 결과임을 명징하게 알려 주고 있다.

200자평
이숭원(李崇源)의 비평은 자체 폐쇄 구조에 갇힌 이론 편향과 대체로 무연하다. 특별히 서구 이론과 낱낱 작품들을 엉성한 아날로지로 엮어 해석하는 연역 논리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비평적 거리를 지켜 왔다.

지은이 소개
이숭원(李崇源)은 1955년 4월 6일 서울 동대문구 숭인동에서 부 이태극(李泰極)과 모 김옥수(金玉洙) 사이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0년 2월에 <정지용 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영동고등학교 교사로 계속 근무하다가 1981년 3월에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대학 정원이 늘고 졸업정원제가 시행되어 각 대학에 교수 충원 열풍이 분 덕에 1981년 10월 26세의 나이로 충남대학교의 전임강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후 총각으로 3년을 지내다가 1984년 2월 윤유경을 만나 4월에 약혼하고 9월에 결혼했다. 1985년 12월 ≪한국문학≫ 평론 부문 신인상에 <김영랑론>을 투고하여 1986년 4월에 등단했다. 1987년 2월에 <한국 근대시의 자연 표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쇠한 부모님과 서울에서 살기 위해 1989년 3월 한림대학교로 옮겼다가 1991년 3월에 다시 서울여자대학교로 옮겨 와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차례
폐허 속의 축복−김종삼의 시
생의 번민을 대하는 세 가지 방법
‘사람의 발견’을 찾아가는 즐거운 여행−황동규 시 50년
노동과 사랑 혹은 진실의 발견−김사인의 시
현대시와 공감의 문제
청춘에 바친 일제강점기 세 시인의 노래
정희성 시가 보여 준 ‘관계’의 행로

해설
이숭원은
해설자 유성호는

책 속으로
나의 청춘을 이야기하라면 1973년 대학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입학과 동시에 서울대 공대와 미대 사이 황량한 벌판에 자리 잡은 공릉동 교양학부에서 1년을 보냈다. 거기서 책을 읽고 짝사랑을 하고 술을 마시고 시도 썼다. 2학년 때에는 청량리의 삐걱거리는 사범대학 교실에서 1년을 보내고, 1975년 이후에는 쥐라기의 공룡처럼 덩치만 큰 관악캠퍼스로 옮겨 와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몇 년을 통학했다. 청춘 시절을 돌아보면 그래도 떠오르는 것은 공릉동 교정에 늘어선 플라타너스와 뒷산 언덕의 코스모스, 그 언덕에서 바라보던 상계동 쪽 들판, 미대와 같이 쓰던 운동장, 거기서 벌이던 탈춤, 축제 때의 연극, 빈 강의실에서 끄적이던 습작 메모, 어깨가 둥글고 얼굴이 흰 여학생의 모습, 고은과 신경림, 황동규와 정현종의 몇 편의 시 등이다.
―<청춘에 바친 일제강점기 세 시인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