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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염라대왕 자오/오규교
ISBN : 9791128820205
지은이 : 후스/훙선
옮긴이 : 조득창
쪽수 : 238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7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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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후스의 <결혼>
천 선생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텐야메이는 어머니를 설득해야 한다. 텐씨 부인은 둘의 사주가 상극이라는 점괘를 들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 텐씨 부인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미신을 완강히 거부하는 부친밖에 없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텐씨는 부인을 엄히 꾸짖으며 텐야메이의 기대에 부응한다. 하지만 텐야메이는 곧 절망한다. 이번엔 텐씨가 동성 결혼 금지라는 구습을 들어 둘의 결혼을 더욱 거세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천 씨와 텐 씨가 2500년 전에는 동성이었다는 것이다. 텐야메이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의지에 따라 천 선생과의 결혼을 밀어붙이려 한다. 텐야메이가 미련 없이 집을 나서는 결말부에서 입센의 <인형의 집>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훙선의 <염라대왕 자오>
대대장의 방을 지키고 있던 자오는 대대장의 돈을 훔쳐 달아나자는 라오리의 제안을 거절한다. 소동 끝에 라오리가 잡혀가지만 이 일로 자오는 대대장으로부터 억울한 문책을 당한다. 자오는 결국 대대장의 돈을 훔쳐 달아나고, 도피처인 숲에서 온갖 환영과 환상에 시달린다. 점차 이성을 잃어 가던 자오는 날이 밝아오자 대대장 일행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중국 근대사의 질곡이 자오의 독백을 통해 드러난다. 극 대부분은 자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 최초로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한 극작품이다. 훙선은 유진 오닐의 <황제 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훙선의 <오규교>
무더운 여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바닥이 말라가기 시작하자 농민들은 소출이 걱정된다. 오규교에 가로막혀 양수기를 마을로 들이는 것조차 어려워지자 농민들은 오규교를 철거하기로 한다. 하지만 오규교의 주인 저우는 풍수적인 이유를 들어 오규교 철거에 반대한다. 오규교를 지키려는 저우와 이에 거세게 반발하는 농민, 둘의 갈등이 폭발하자 처음엔 저우의 편에서 농민들을 저지하던 저우 댁 하인과 소작농이 농민 편에 합세한다. 그리고 드디어 오규교 철거가 시작된다. 훙선의 ≪농촌삼부곡≫가운데 하나다.

200자평
중국 최초의 화극인 후스의 <결혼>, 중국 최초의 표현주의 극인 훙선의 <염라대왕 자오>, 훙선의 대표작 ≪농촌삼부곡≫의 하나인 <오규교>를 엮었다. 중국 근대 연극의 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소개
후스(胡適)
본명은 후훙싱(胡洪騂)이다. 중국현대문학가 겸 저명한 학자로, 1891년에 안후이 성 지시 현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상하이로 가서 수학했다. 1910년 미국에 유학하여 처음에는 농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문학과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914년 코넬대학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존 듀이에게 교육학을 배우고 진화론·프래그머티즘의 영향을 받았다. 1917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해 7월에 귀국해 베이징대학 교수가 되었다. 1938년에는 국민당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 뒤 행정원 최고정치고문, 베이징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국공 내전으로 베이징이 중국 공산당에 포위되자 1948년 미국에 망명했다. 1957년에는 타이완 정부의 국제연합(UN) 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이후 타이완으로 가 타이완 최고 학술 기관인 중앙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잡지 ≪자유중국≫의 발행인이 되어 국민당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 사상과 언론 자유를 제창해 타이완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1962년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훙선(洪深)
중국 현대 극작가 겸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중국 현대극을 개척한 주요 인물 중 하나다. 1894년에 장쑤 성 우진 현에서 태어났다. 1912년 칭화학교에 들어간 뒤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푸단대학교, 지난대학교, 산둥대학교, 중산대학교 등에서 외국 문학과 교수를 지내명서 연극과 영화 사업에 종사했다. 1930년에는 중국좌익작가연맹 및 중국좌익극단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1934년에는 칭다오에 있는 산둥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지 ≪피서녹화(避暑錄話)≫를 창간했고, 얼마 후 상하이에서 샤옌(夏衍) 등과 함께 잡지 ≪광명(光明)≫을 창간하고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았다. 중일전쟁 발발 후, 훙선은 상하이 문화계가 주도하는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했다. 또 1938년에는 국민정부의 군사위원회 정치부 제3청(第三廳)에서 연극을 관장하면서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상하이로 돌아가 푸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민당을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샤먼대학교로 가서 교수 생활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연극가협회부주석, 중국인민대외문화협회부회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5년 향년 61세로 병사했다.

옮긴이 소개
조득창은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북경사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다.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공저, 2009),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2006), 역서로는 ≪피에로≫(2013)가 있다.

차례
결혼
염라대왕 자오
오규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 속으로
텐야메이: (절망하며) 아빠! 평생 미신적인 풍속을 없애려고 하신 아빠가 도대체 미신적인 가문의 규율을 없앨 수 없으리라고는 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20쪽, <결혼>

라오리: 염라대왕 나리, 그래도 근사하게 죽은 셈입니다! 형제들이 줄 서서 북 치며 형님을 전송하고 있습니다! (몸을 굽힌다. 그를 위해 옷을 바로 해 준다.) 대대장이 형님한테 잘 대해 주었습니까? 군영에 있는 사람들 중 형님의 마음이 가장 진실했습니다. 어리석을 정도로요! (가리키며 이것저것 이야기한다. 책망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형님은! 호인이 되기엔 마음이 너무 못됐고, 악인이 되기엔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호인이든 악인이든 제대로 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형님은 동분서주하며 도처에서 사고를 저지르면서 한평생 하루도 편하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오늘은 저 라오리가 형님을 묻겠습니다!
109∼110쪽, <염라대왕 자오>

리취안성: (다리로 뛰어올라 간다.) 당신 착실한 사람들을 속이지 마. 우리는 당신하고 예의 있게 다리 철거를 의논하려고 했는데, 당신은 기어코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군. 다리는 철거하기로 정해졌어. 당신이 동의해도 철거할 거고, 동의 안 해도 철거할 거야. 감옥에 넣어도 괜찮아! 지금 법이야 향신들에게 유리하지 우리 시골 사람들에게 유리하겠어? (앞으로 나가 다리 난간의 벽돌 하나를 뺀다.)
206쪽, <오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