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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 시선
ISBN : 9791128823640
지은이 : 고적
옮긴이 : 주기평
쪽수 : 316 Pages
판형 : 128*188mm
발행일 : 2017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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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고적(高適, 701?∼765)은 당(唐)나라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의 이른바 성당(盛唐) 시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변새(邊塞)에서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장수들의 투지와 용맹함을 찬양하거나 병사들의 고통을 써내는 등 많은 변새시(邊塞詩)를 창작해 동시대의 잠삼(岑參)과 더불어 당대(唐代) 변새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고적은 공업의 수립과 일신의 영달을 목표로 삶의 오랜 기간을 여러 곳을 유랑하며 떠도는 생활을 했으며, 실제 고관으로서 득의했다고 할 수 있는 시기는 생의 후반부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또한 안사의 난 이후 정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며 관직에서 승승장구한 이후로는 쓴 작품 수도 이전보다 많지 않았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의 대다수는 은거와 유랑을 반복하던 시기에 쓴 것으로, 공업 수립의 열망과 그 좌절에 따른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현재 그의 시는 전하는 판본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240여수가 전하고 있는데, 이 중 특정인에 대한 기증시나 증별시가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대상에 따라 그 내용과 표현 방식 또한 차이가 나는데, 이는 오랜 기간 떠돌며 불우했던 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적은 평생토록 수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동정과 연민 및 격려의 뜻을 나타냄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위안으로 삼고, 고관이나 정치적 유력자들에게는 이들에 대한 찬미와 함께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드러냄으로써 간알의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의 시 중 가장 돋보이며 또한 문학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의 변새시(邊塞詩)라 할 수 있다. 고적은 40여 편에 달하는 변새시를 썼는데, 그의 변새시는 동시대 잠삼(岑參)의 변새시와도 다른 풍격을 보인다. 즉 잠삼의 시가 화려하고 섬세한 정경 묘사와 독특하고 빼어난 표현으로 호탕하고 격정적인 정서를 나타내었던 반면, 고적의 시는 평이하고 담담한 정경 묘사와 침중하고 혼후한 표현으로 침울하고 비통한 정서를 나타내었으니, 잠삼과 더불어 당대 변새시의 또 다른 최고 수준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200자평
고적은 잠삼(岑參)과 함께 당(唐)대 변새시를 대표한다. 잦은 이민족의 침입과 정변으로 나라가 어지럽던 시기, 변방을 떠돌며 직접 목격한 백성과 병사들의 고통, 험준한 국경 지역의 풍경, 낯선 이민족들의 생활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평이하고 담담한 표현이 오히려 한층 침울하고 비통한 정서를 나타낸다.

지은이 소개
고적(高適, 701?∼765)은 당(唐)나라 창주(滄州) 수[(蓚,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징현(景縣)] 사람으로, 자(字)가 달부(達夫)다. 일찍이 공업 수립의 뜻을 품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오랜 기간 송성[宋城, 지금의 허난성 상추현(商丘縣)]에 은거하며 연조(燕趙) 일대를 유람하며 지냈다. 천보(天寶) 8년(749) 나이 4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저양태수(雎陽太守) 장구고(張九皐)의 추천으로 유도과(有道科)에 합격해 봉구위(封丘尉)에 제수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고, 가서한(哥舒翰)이 농우절도사(隴右節度使)가 되자 그의 막부(幕府)에 들어가 장서기(掌書記)가 되었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가서한을 도와 동관(潼關)을 지켰는데, 동관이 함락되자 그 패배 원인을 현종(玄宗)에게 아뢰어 간의대부(諫議太夫)로 발탁되었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양주대도독부장사(揚州大都督府長史)·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 되어 위척(韋陟), 내진(來瑱)과 함께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난을 토벌했다. 그러나 환관(宦官) 이보국(李輔國)의 참언으로 태자소첨사(太子少詹事)로 강등되었으며 오래지 않아 팽주(彭州)와 촉주(蜀州)의 자사(刺史)로 전출되었다가 다시 성도윤(成都尹)·검남서천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에 임명되었다. 대종(代宗) 때에 형부시랑(刑部侍郞)에서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옮겼으며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고, 영태(永泰) 원년(765) 정월에 병사했다. 변새(邊塞)에서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장수들의 투지와 용맹함을 찬양하거나 병사들의 고통을 써내는 등 많은 변새시(邊塞詩)를 창작해 잠삼(岑參)과 더불어 당대(唐代) 변새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저서로 ≪고상시집(高常侍集)≫ 10권이 있다.

옮긴이 소개
주기평(朱基平)은 호(號)는 벽송(碧松)이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있으며 중국어와 중국 고전 문학의 강의 및 중국 고전의 연구와 번역을 하고 있다.
저역서로 ≪육유 시가 연구≫, ≪육유사≫, ≪육유 시선≫, ≪잠삼 시선≫, ≪역주 숙종 춘방일기≫, ≪당시삼백수≫(공역), ≪송시화고≫(공역), ≪협주 명현십초시≫(공역), ≪사령운, 사혜련 시≫(공역)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중국 만가시의 형성과 변화 과정에 대한 일고찰>, <두보 시아시 연구>, <육유 시사 비교 연구> 등이 있다.

차례
인생길의 어려움 2수(行路難 二首)
위 참군과 이별하며(別韋參軍)
궂은비 속에 방사 형제에게 부쳐(苦雨寄房四昆季)
객사에 있는 이 소부를 보내며(送李少府時在客舍)
변새에서(塞上)
계문에서 왕지환과 곽밀지를 만나지 못하고 인해서 남기어 드리다(薊門不遇王之渙郭密之因以留贈)
풍 판관과 이별하며(別馮判官)
영주의 노래(營州歌)
왕칠의 <옥문관에서 피리 소리를 들으며>에 화답해(和王七玉門關聽吹笛)
계문행 5수(薊門行 五首)
계북에서 돌아오며(自薊北歸)
한단 소년행(邯鄲少年行)
기수 물가에서 설거에게 수답하고 겸해 소부 곽미에게 부쳐(淇上酬薛三據兼寄郭少府微)
진삼 처사와 이별하며 드리다(贈別晉三處士)
기수 물가의 별장에서(淇上別業)
잠이십 주부가 가을밤 보내온 시에 답해(酬岑二十主簿秋夜見贈之作)
위팔을 전송하며(送魏八)
기수 물가에서 활대로 가는 위 사창을 전송하며(淇上送韋司倉往滑臺)
밤에 위 사사와 이별하며(夜別韋司士)
선보의 양구 소부에 곡하며(哭單父梁九少府)
기수에서 황하를 건너는 도중에 쓰다 13수 중 5수(自淇涉黃河途中作十三首)
연가행(燕歌行)
궂은 눈 4수(苦雪四首)
위오와 이별하며(別韋五)
소십팔을 전송하며, 돌아오신 방 시어께 드리다(送蕭十八與房侍御回還)
제공들과 가을날 금대에 올라(同群公秋登琴臺)
옛 대량행(古大梁行)
동평으로 가는 길에 쓰다 3수(東平路作 三首)
동평으로 가는 도중 홍수를 만나(東平路中遇大水)
도중에 서 녹사에게 부치다(途中寄徐錄事)
동평에서 전 위현 이채 소부와 이별하며(東平別前衛縣李寀少府)
이 태수와 함께 북지에 배 띄우고 고평의 정 태수와 연회하며(同李太守北池泛舟宴高平鄭太守)
제공들과 복양의 성불사 누각에 올라(同群公登濮陽聖佛寺閣)
역사를 읊다(詠史)
<산으로 돌아가는 노래>를 지어 심사 산인에게 드리다(賦得還山吟送沈四山人)
동대와 이별하며 2수(別董大 二首)
농가에서 봄날 바라보며(田家春望)
가을에 쓰다(秋日作)
정삼과 위구, 낙양의 제공들에게 이별하며 드리다(留別鄭三韋九兼洛下諸公)
막 봉구에 이르러 쓰다(初至封丘作)
봉구현에서(封丘縣)
군대를 전송하며 계북에 이르러(送兵到薊北)
청이군에 사신 갔다 거용관으로 들어오며 3수(使靑夷軍入居庸三首)
계성에서 쓰다(薊中作)
섣달그믐 밤에(除夜作)
여러 공들과 함께 자은사 탑에 올라(同諸公登慈恩寺浮圖)
설 사직과 여러 공들과 함께 비 개인 가을날 남산을 굽어보며 쓰다(同薛司直諸公秋霽曲江俯見南山作)
취한 후 장욱에게 드리다(酔後贈張九旭)
최 원외, 기무 습유, 경조부 이 사조와 함께 중양절에 잔치하며(同崔員外綦毋拾遺九日宴京兆府李士曹)
민 땅으로 폄적되어 가는 정 시어를 전송하며(送鄭侍御謫閩中)
안서로 부임하는 이 시어를 전송하며(送李侍御赴安西)
협중으로 폄적되어 가는 이 소부와 장사로 폄적되어 가는 왕 소부를 전송하며(送李少府貶峽中王少府貶長沙)
송별(送別)
농산에 올라(登壠)
창송의 동쪽 경계로 들어가 산길을 지나며(入昌松東界山行)
금성 북쪽 누대에서(金城北樓)
백장봉에 올라 2수(登百丈峰二首)
변경의 노래(塞下曲)
구곡사 3수(九曲詞三首)
부락의 노래(部落曲)
광릉에서 정 처사와 이별하며(廣陵別鄭處士)
설대의 팔뚝 위에 있는 매를 보고 쓰다(見薛大臂鷹作)
팽주로 부임하는 산길에 쓰다(赴彭州山行之作)
두이 습유에게 드리다(贈杜二拾遺)
인일에 두이 습유에게 부치다(人日寄杜二拾遺)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 속으로
연가행

한나라 동북쪽에 전란이 일어나니
한나라 장군이 집을 떠나 남은 적을 치러 갔네.
남아는 본래 거침없이 내달리는 것을 중히 여기는 법,
천자께서 특별히 용안을 보여 주셨네.
징 치고 북 두드리며 유관을 내려가니
깃발들은 기다랗게 갈석산 사이에 이어지고,
교위의 급보는 사막에 날아들며
선우의 사냥 횃불은 낭거서산을 비추었네.
쓸쓸한 산천은 변방 끝까지 펼쳐져 있는데
비바람 섞여 치듯 오랑캐의 기병 쳐들어와,
전사들은 전장에서 절반이 죽었거늘
미인은 장막 아래에서 여전히 노래하고 춤추었네.
가을 저무는 넓은 사막엔 변새의 풀이 시들고
석양 내리는 외로운 성엔 싸우는 병사가 적었나니,
장수들은 성은을 입었건만 항상 적을 경시해
변방에서 힘이 다해 포위를 풀지 못했네.
갑옷 입고 멀리서 나라 지키느라 오래도록 고생하니
이별한 후 분명 옥 젓가락 같은 눈물 흘렸겠고,
젊은 아내는 성남에서 애간장이 끊어지고
병사는 계북에서 부질없이 돌아보리.
변방의 바람 휘몰아치니 어찌 견뎌 낼 수 있겠으며
외딴 곳 아득히 황량하니 또 무엇이 있으리?
살기는 하루 종일 전운을 일으키고
처량한 소리가 밤새도록 조두에서 전해 오리.
하얀 칼날의 흥건한 핏자국을 서로 보나니
예로부터 절개에 죽지 어찌 공훈을 바랐으리?
그대 보지 못했는가, 사막에서의 전쟁의 고통을.
지금도 여전히 이 장군을 그리워하리.
燕歌行

漢家煙塵在東北, 漢將辭家破殘賊.
男兒本自重橫行, 天子非常賜顔色.
摐金伐鼓下楡關, 旌旆逶迤碣石間.
校尉羽書飛瀚海, 單于獵火照狼山.
山川蕭條極邊土, 胡騎憑陵雜風雨.
戰士軍前半死生, 美人帳下猶歌舞.
大漠窮秋塞草腓, 孤城落日鬪兵稀.
身當恩遇恒輕敵, 力盡關山未解圍.
鐵衣遠戍辛勤久, 玉筯應啼別離後.
少婦城南欲斷腸, 征人薊北空回首.
邊庭飄颻那可度, 絶域蒼茫更何有.
殺氣三時作陣雲, 寒聲一夜傳刁斗.
相看白刃血紛紛, 死節從來豈顧勳.
君不見沙場征戰苦, 至今猶憶李將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