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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수필선집
ISBN : 9791128839641
지은이 : 리영희
옮긴이 :
쪽수 : 264 Pages
판형 : 128*188
발행일 : 2017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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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양가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한편으로 지식인은 자신이 가진 ‘앎’을 통해 공동체의 보다 나은 삶과 가치를 제시하는 존재로 인식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지닌 지식을 통해 권력에 영합하는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시대가 흐름에 따라 후자로서의 지식인 상(像)이 강화되는 경향인 듯하다. 즉, 거시적인 층위에서의 시대정신의 분석과 공동의 가치에 대한 모색이라는 지식인 고유의 몫보다는, 일종의 지식ᐨ기술자, 즉 테크노크라트로서의 지식인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분화된 전문 분야에서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세속적 안위를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지식인 상이 주류적인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실 이와 같은 지식인의 양가성은 어쩌면 지식인이 처음 탄생한 순간부터 예정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지식은 그 자체로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의해 축적된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이러한 앎을 체득한 개체인 지식인은 곧 자신의 앎을 공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지식인 역시 하나의 개체일 따름이며, 따라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야 하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매우 세밀하게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은 일종의 지식ᐨ기술자로 활동함으로써만 즉각적인 효용성을 입증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지식인이 이 두 가지 상이한 존재 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공공적 성격의 지식보다 즉각적인 효용성을 지닌 지식을 요구하는 사회적 현실을 고려한다면 후자로서의 지식인 상이 강화되는 것 역시 그럭저럭 납득할 수는 있는 일이다.
문제는 후자로서의 지식인 상, 그러니까 테크노크라트로서의 지식ᐨ기술자의 상이 압도적으로 강조되면서, 지식인이 지닌 본연의 고유한 ‘의무’를 담당할 존재가 상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지식은 그 자체로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는 지식인이 공동체의 보다 나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유해야 하는 가치를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더 이상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집단 자체가 부재한 것이 현실이며, 이는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지금 우리가 리영희의 수필을 다시 읽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리영희는 한국 현대사에서 단연코 두드러지는 온전한 의미의 ‘지식인’일 것이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가 지닌 공동의 문제를 냉철히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적 탐구를 그만큼 뜨겁게 수행한 인물은 흔하지 않다. 더욱이 그의 지식은 단지 현실을 ‘관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현현하는 것이었기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리영희의 수필을 통해 한 실천적 지식인의 내면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자평
휴머니즘과 자유 사상을 바탕으로, 권력과 언론의 야합을 질타하고 언론 자유 쟁취의 중요성을 계몽한 리영희. 그의 수필은 곧 민중 계몽의 수단이자 저널리즘 정신의 실천이었다. 거침없이 사회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그의 수필은 공동체의 보다 나은 미래와 가치에 대한 사유를 현실과의 천착 속에서 수행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 준다.

지은이 소개
리영희(李泳禧, 1929∼2010)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났다.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했으며,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고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었고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도쿄대학교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 한 학기씩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1987년에는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정식 부교수로 초빙되어 ‘평화와 갈등’ 특별 강좌를 맡아 강의했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 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로 재임했다.
2000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하다 회복했고, 이후 저술 활동을 자제하면서도 지속적인 사회 참여와 진보적 발언을 계속했고, 불편한 몸으로 대담 형식의 자서전 ≪대화≫를 완성했다.
2010년 12월 5일 지병 악화로 타계했다.
그는 휴머니즘과 자유 사상을 바탕으로, 권력과 언론의 야합을 질타하고 언론 자유 쟁취의 중요성을 계몽했다. 그의 글쓰기와 사회적 실천 활동은 한국 사회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확대, 실천으로서의 저널리즘 정신 확산, 대안 언론과 참여 언론 발전에 기여했다.
늦봄통일상, 만해상, 심산상, 단재언론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80년대의 국제 정세와 한반도≫, ≪베트남 전쟁≫, ≪역설의 변증≫, ≪역정≫, ≪자유인, 자유인≫, ≪인간만사 새옹지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및 일본어로 번역된 ≪分斷民族の苦惱≫,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8억 인과의 대화≫, ≪중국 백서≫, ≪10억 인의 나라≫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와 미발표 글들을 모은 ≪리영희 저작집≫(전 12권)을 펴냈다.

차례
권총을 펜으로 바꾸어
불효자의 변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해방 40년의 반성과 민족의 내일
통일의 도덕성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해설자에 대해

책 속으로
식민 상태에서 벗어난 민족이 ‘새 나라’를 꾸려 가는 작업은 결코 과거의 식민자가 남기고 간 것 위에서의 변장(變裝)이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는 일제가 남기고 간 일체의 것을 일단은 부정하고 그것들과 단절하고 극복해야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질적 변화’이어야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새 나라를 건설하려는 우리가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몇 해 동안에 했어야 할 일은 거족적 역량을 쏟아 일본인이 우리를 부정했던 그 ‘부정(否定)을 부정’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해방 40년의 반성과 민족의 내일>에서